촛불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돼 110여일 동안 서울 견지동 조계사 경내에서 천막 농성을 벌여 온 수배자 6명이 29일 한꺼번에 잠적했다. 철통 같은 경비를 해왔던 경찰은 도주 경로나 시점조차 제때 파악하지 못해 경비에 큰 허점을 드러냈다.
경찰은 박원석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과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수배자 6명이 이날 오후 조계사를 빠져나간 것을 뒤늦게 확인하고 소재파악에 나섰지만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했다.
경찰과 광우병국민대책회의 등에 따르면 수배자들은 낮 12시30분께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2층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오후 1시께 종적을 감췄다. 경찰은 수배자들이 잠적한 것을 뒤늦게 알고 오후 2시께부터 경내를 샅샅이 수색했으나 소재를 파악하는데 실패했다.
수배자들은 이날 음력 초하루 법회로 경내가 복잡한 것을 이용해 경비가 상대적으로 소홀한 점심시간에 신도로 가장해 빠져나갔거나, 오랜 조계사 생활을 통해 파악해 둔 비밀 통로로 도주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또 불교계 자극을 우려해 검문검색을 하지 않았던 조계종 업무용 차량 49대를 이용해 도주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수배자들은 경찰의 위치추적을 우려한 듯 휴대폰과 노트북 컴퓨터 등 소지품을 그대로 둔 채 사라졌다.
이들은 김광일 광우병국민대책회의 행진팀장이 조계사를 빠져나간 다음날인 25일부터 도주 방법에 대한 의견을 조율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경비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달 22일 이석행 위원장의 경내 잠입과 24일 김광일 행진팀장의 도주도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날도 수배자 6명이 모두 도주하고 2시간 가까이 지난 뒤에도 "수배자들이 경내에서 머물고 있을 수도 있다"며 우왕좌왕했다. 경찰에 대한 비난이 일자 서울경찰청은 이날 저녁 긴급 해명자료를 배포, 검거전담팀을 구성해 빠른 시일 내에 수배자 전원을 검거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수배자들은 수배생활을 도와준 조계사 측은 물론 대책회의나 민주노총 등 소속 단체에도 사전에 도주를 전혀 알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임태훈 대책회의 인권법률팀장은 "이날 오후 3시15분께야 박원석 상황실장의 전화를 받고서야 경내를 빠져나온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측도 "오전에 경내에 함께 있던 사무차장이 사무실로 위원장 휴대폰을 가져왔길래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오늘 빠져나갈지는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도주에 성공한 수배자들은 다음달 9일로 예정된 노동자대회를 기점으로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도 제기된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위원장은 평소에 연행은 언제든지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며 "어떤 형식으로든 노동자대회 때 공개된 장소에서 입장을 밝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전화로 "조만간 다시 국민들 앞에 서서 이 저항의 행렬에 함께 할 것"이라는 말을 남겨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했다.
장재용 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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