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반도체 업계는 경악했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주력품인 1기가비트(Gb) D램 가격이 마지노선으로 여겼던 1달러 선 밑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1년 전 가격의 4분의 1 수준으로, 지난해 11월 512메가비트(Mb) D램 가격이 1달러 밑으로 떨어진 이후 11개월 만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역사상 이런 적은 없었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 메릴린치와 JP모건은 최근 내년 세계 휴대폰 시장이 교체수요 감소 등의 영향으로 전년 대비 각각 5%, 3.5%씩 줄어들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한 휴대폰 제조업체 관계자는 “보수적 관점에서 내년 경영계획을 짜고는 있지만, 사실 밑그림을 그리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우리나라 수출의 양대 축을 형성하고 있는 반도체와 휴대폰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발(發) 금융위기와 글로벌 경기 침체가 겹치면서 전례 없는 어려움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공급 과잉에 따른 가격 하락은 국내ㆍ외 반도체 시장을 얼어붙게 했고, 성장세를 이어온 휴대폰 시장마저 내년 전망이 불투명하다. 하지만 국내 반도체 및 휴대폰 업계는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 이럴 때일수록 공격적인 투자와 고객 가치 극대화 전략을 앞세워 위기 탈출과 동시에 시장 지배력 확대를 꾀한다는 전략이다.
반도체 업계, 투자 활성화로 시장 리더십 확보
지난달 9월 반도체 D램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5% 감소한 8억6,000만달러, 낸드플래시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47.3% 줄어든 1억7,000만 달러에 머물렀다. 업계는 이 같은 침체가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관측하면서도, 오히려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선도 업체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계기로 삼을 방침이다. 과거 세계 반도체 업계를 주름잡았던 일본이 1980년대 말 찾아온 불황기에 투자를 주춤한 사이, 과감한 투자를 단행한 국내 반도체 업계가 90년대 초부터 1위 자리를 탈환했던 역사를 거울로 삼자는 것이다.
권오현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은 내년도 투자 계획에 대해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의 리더십을 이어갈 수 있는 수준의 투자는 계속할 것”이라며 공격 경영의 뜻을 내비쳤다.
하이닉스반도체 역시 지금처럼 모두가 어려운 때 기술 경쟁력을 갖춘 업체에겐 기회가 될 것으로 보고 연구ㆍ개발(R&D)에 힘을 쏟고 있다. 이를 위해 국내 유수 대학들과 산ㆍ학 협력을 체결, 우수 인력을 확보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또 매출 대비 R&D 투자비용도 2006년 5%에서 2007년 7%로 높인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엔 11%까지 확대했다.
휴대폰 코리아, ‘고객가치 극대화’ 전략
휴대폰 업계는 사실 최근까지 호황을 누렸다. 선진시장의 3G 교체 수요와 신흥시장의 신규수요 증가로 시장 환경이 양호했던 데다 분사를 결정한 모토로라와 신제품 실적이 안 좋은 소니에릭슨 등 경쟁사의 부진으로 반사이익까지 향유했다. 그러나 앞으로가 문제다. 국내 휴대폰 업계는 ‘고객가치 극대화’ 전략을 통해 조만간 다가올 것으로 예상되는 경기 불황에 대비하는 한편,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한층 더 다져나갈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휴대폰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객군을 휴대폰 이용방식에 따라 6개로 분류한 ‘6대 카테고리 전략’으로 불황 타개에 나서고 있다. 이를 통해 저가시장은 물론 고가시장의 프리미엄급 교체수요까지 폭 넓게 공략, 시장 지배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태세다.
LG전자도 ‘고객 가치’를 극대화하면서 수익성 위주의 사업을 전개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특히 선진 시장에서의 교체수요가 줄어들 것을 감안, 신흥시장에서의 프리미엄 제품 비중 확대로 이를 만회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전략을 바탕으로 LG전자는 2010년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확고한 ‘톱3’에 진입한다는 계획이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 안승권 LG전자 MC사업본부장 "소비자 마음 꿰뚫지 못하면 도태"
"남들이 못 보는 고객들의 니즈를 찾아야 한다.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글로벌 휴대폰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안승권(사진) LG전자 모바일커뮤니케이션즈(MC) 사업본부장(부사장)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꿰뚫는 '고객 인사이트' 전략을 불황 탈출의 생존 카드로 꼽았다. 안 본부장은 특히 "경기 불황이 지속될수록 소비자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까다롭고 보수적인 구매기준으로 제품 구입에 나설 것"이라며 "고객의 눈높이에서 시작되는 인사이트 전략이야말로 불황의 파고를 넘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맞춤형 전략"이라고 소개했다.
LG전자는 지난해까지 일부 전략폰에만 적용했던 인사이트 전략을 올해부터는 전 제품의 개발 과정에 확대, 적용하고 있다. 모든 휴대폰을 디자인과 기능, 중저가 등 3가지 제품군으로 나눈 뒤, ▦최상위 디자인 추구형 ▦최상위 기능 추구형 ▦유행 선도 디자인 추구형 ▦유행 선도 기능 추구형으로 소비자 층을 세분화해 공략하고 있다.
이를 위해 LG전자는 올해 초 전략기획팀 산하에 인사이트 마케팅 그룹을 신설, 우리나라와 미국, 영국, 프랑스, 브라질, 인도, 중국 등 20개국에서 1만5,000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고객들이 원하는 '맞춤형 제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안 본부장은 "시장 상황이 급변하더라도 고객 인사이트 전략으로 탄생한 프리미엄 제품은 1달러라도 더 주고 사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 LG전자가 고객 인사이트 전략의 일환으로 내놓은 제품들은 속속 히트모델로 등극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유럽에 첫 선을 보인 '프라다폰'은 출시 18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100만대를 넘어섰으며, 2007년 10월 출시된 뷰티폰도 300만대(9월 말 기준) 이상 팔렸다.
앞서 2006년 10월에 공개된 샤인폰도 지난달까지 970만대의 누적 판매량을 보이며 1,000만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같은 고객 인사이트 전략폰들의 선전을 등에 업고 LG전자는 당초 올해 목표했던 '1억대 판매' 돌파도 무난할 것으로 보고 있다.
LG전자는 향후에도 고객 인사이트 전략을 바탕으로 각 지역별 맞춤형 전략 모델들을 선보일 계획이다. 안 본부장은 "고가에서부터 중ㆍ저가 제품까지 고객에게 맞춤옷을 제공하는 것처럼 차별적인 가치를 주는 제품들을 내놓을 것"이라며 "이런 전략을 바탕으로 유럽은 물론 신흥시장 공략도 가속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 반도체·휴대폰업계 촉구 "관세 감면 혜택 연장·수도권 규제 완화를"
반도체 및 휴대폰 업계가 정부에 바라는 사안은 크게 ▦관세 감면 ▦수도권 규제 완화 ▦연구ㆍ개발(R&D) 지원 등 세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내년부터 폐지되는 공장자동화 기기 수입 관세 감면(30~50%) 혜택을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2004년까지 40%였다가 이후 30%로 축소된 관세 감면 혜택을 다시 확대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내년까지 반도체 경기 불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장비 및 부속 기기의 구매비용을 경감시켜 줄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기업들이 자동화 기기를 국산화하는 데 노력하기보다 손 쉬운 수입에 의존, 핵심 부품ㆍ소재와 장비의 대외 의존도를 더욱 높일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의 국가 균형발전 전략에 따른 수도권 규제를 과감히 풀어줘야 한다는 것은 업계 숙원이다. 업계 관계자는 "우수 인력과 잘 갖춰진 인프라가 몰려 있는 수도권 지역에 공장을 신축,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데 각종 규제 덩어리가 이를 막고 있다"며 "이 같은 규제가 기업들의 공장 해외 이전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밝혔다.
휴대폰 업계에선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해 중소 휴대폰 부품 제조업체들에게 필요한 R&D 나 전문인력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성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휴대폰 업체들이 차별화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중소기업들의 소프트웨어 기술 개발이 필수"라며 "민ㆍ관 매칭펀드 방식을 활용, 대기업 및 소프트웨어 벤처기업 간의 협력을 장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