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문을 부수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시체 네 구가 여기저기서 발견됐다. 올해 70세인 나이르씨와 아내 샤말(60)은 독극물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 나이르씨 부부의 아들과 딸은 각각 목을 매 세상과 이별했다. 집에서는 싸늘한 주검과 함께 신용카드 73장이 발견됐다. 경찰은 나이르씨 가족이 신용카드 사용 때문에 생긴 과도한 빚을 감당하지 못해 집단 자살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고속성장을 거듭하던 인도 경제가 금융위기 여파로 불거진 신용카드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9일 보도했다. 수년 전 신용카드 대란으로 가계가 파탄 났던 한국의 모습과 흡사하다. 인도는 15년 전만 해도 신용카드가 거의 보급되지 않은 '카드 불모지'였다. 그러나 경제성장과 맞물려 현재는 카드 보유자가 3,000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신용카드가 대중화됐다.
5년 전과 비교하면 보유자가 3배 이상 급증했다. IT업계 종사자나 영화산업 관계자 등 중산층은 물론 저소득층과 시골에 사는 사람들조차 카드를 수십 장씩 소지하게 됐다. 이들은 최신 자동차와 최신 휴대폰을 구입하는데 카드를 마구 긁었다. 그러나 빚으로 성장한 경제는 언젠가는 터지기 마련. 올해 인도 전체의 카드 청구액은 4년 전에 비해 3배 이상 급증해 140억 달러에 이르렀다. 그 결과 빚을 갚지 못해 나이르 가족처럼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하는 일이 벌어졌다.
불길한 신호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7~9% 수준이던 연체율이 올해 15%까지 치솟을 조짐이다. '개념' 없이 카드를 긁다 뒤늦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도 속출하고 있다. 쿨카르니 뭄바이 신용상담센터 대표는 "카드 빚에 짓눌린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백 명씩 방문하고 있다"며 "이들은 카드를 마음껏 사용할 줄만 알았지, 사용한 만큼 돈이 청구된다는 사실은 망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올해 28세 밖에 안 된 로이드 수자도 카드 빚으로 삶이 망가져 버렸다.
7년 전 만든 카드로 수자는 옷을 사고 가구를 구입하고 에어컨을 샀다. 차도 새로 뽑고 현금서비스도 이용했다. 가족과 카드를 공유하고 신용카드 서너 개를 더 만들어 사용했더니 어느 새 카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금은 월급의 75%가 카드 빚 갚는데 사용된다. 그것도 최소한의 금액만 결제하고 있어 빚은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수자는 매일 부모로부터 "당장 카드를 내다 버리라"는 말을 듣고 있다.
인도가 카드대란에 직면한 이유는 은행들이 회원들의 신용을 평가하는 제대로 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신용카드를 무차별적으로 찍어냈기 때문이다. 씨티그룹이나 HSBC 같은 외국계 거대 은행들은 물론 ICICI뱅크 등 인도 굴지의 금융기관은 시장 확대에만 열을 올렸고 신용관리는 소홀했다. 금융기관들은 최근 연체율이 치솟자 뒤늦게 카드발급 기준을 강화했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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