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많은 '마른' 당뇨병 환자에게 알맞은 당뇨병 치료제가 각광을 받고 있다. 'DPP-4(디펩티딜펩티다제-4) 억제제'가 바로 그것이다. MSD의 '자누비아'(성분명 시타글립틴) 등이 출시돼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신약 승인서를 신청 중인 아스트라제네카의 '온글리자'(삭사글랍틴), 3상 임상시험이 진행 중인 베링거인겔하임의 'BI 1356' 등도 조만간 국내에 출시할 예정이다.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인크레틴(혈당 조절 호르몬)의 작용을 방해하는 DPP-4효소를 억제함으로써 혈당을 떨어뜨리는 메커니즘이다. DPP-4억제제는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저혈당, 체중증가 등의 부작용이 적어 마른 당뇨병 환자가 많은 한국인 등 동양인 환자에게 효과가 더 좋을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강남성모병원 내분비내과 윤건호 교수는 "과거에는 비만한 서양 당뇨병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인슐린 저항성이 당뇨병의 주된 문제로 인식됐지만, 최근 연구결과 인슐린 분비를 좌우하는 베타세포 기능이 당뇨병 진행과 발병에 더 중요한 요인으로 주목 받고 있다"고 말했다.
■ 인슐린 분비 촉진하는 메커니즘
인체는 인크레틴 호르몬이 주도하는 훌륭한 혈당 조절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인크레틴 호르몬은 혈당이 높고 낮음에 따라 적절히 췌장에서 인슐린(혈당이 높을 때 낮추는 역할)과 글루카곤(혈당이 낮을 때 높이는 역할)을 분비하도록 조율한다.
문제는 인크레틴 호르몬 분비량이 당뇨병 환자에게는 현저히 줄며, 이마저도 생성 후 80% 정도가 1~2분 만에 DPP-4 효소에 의해 무력화된다. DPP-4억제제는 이 같은 DPP-4 효소 활동을 막아 인크레틴 호르몬의 혈당 조절 작용이 최대한 원활히 진행되도록 돕는다.
그런데 당뇨병 치료제의 대표적인 부작용은 저혈당이다. 저혈당은 당뇨병 치료 과정에서 인슐린의 과다한 분비로 인해 발생한다. 설포닐우레아 등 기존 당뇨병 치료제는 인체 내 혈당 수준에 관계 없이 일률적으로 췌장 내 베타세포를 자극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므로 자칫 혈당이 정상 이하로 떨어지는 저혈당이 될 수 있다.
저혈당이 되면 식은 땀, 불안감, 가슴 두근거림, 빈맥, 두통, 어지럼증 등 가벼운 증상에서 심하면 경련과 혼수상태까지 일어날 수 있다.
또한 과다한 인슐린 분비는 환자의 체중 증가로 이어진다. 인슐린은 잉여 포도당을 체내 축적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DPP-4억제제 도움을 받아 인슐린 분비가 최적화되면 몸무게 증가는 그리 많지 않게 된다.
인크레틴 호르몬 자체가 식욕 억제 기능이 있다는 점에서도 DPP-4억제제 등 인크레틴 호르몬에 기초한 치료법이 체중 조절에 기여할 수 있다.
■ '마른' 당뇨병 환자에게 적합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은 서양인에 비해 마른 당뇨병 환자가 많다. 그렇지만 서양보다 비만인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당뇨병 유병률이 높은 이유를 전문가들은 동양인이 베타세포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어 인슐린 분비기능이 약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서양인은 포도당이 적절히 근육 에너지로 사용되지 않은 인슐린 저항성이 많은데, 동양인은 베타세포가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양분을 섭취(식생활 서구화 탓으로)해 당뇨병이 급증한다는 것이다. 인슐린 분비량을 늘리는 설포닐우레아 계열 약이 국내에서 가장 많이 처방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DPP-4억제제는 인슐린 분비능력이 떨어진 당뇨병 환자의 췌장 내 베타세포를 직접 자극하지 않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므로 동양인에게 효과가 더 좋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실제로 MSD의 자누비아는 한국과 중국, 인도의 제2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18주간 임상시험한 결과, 당화혈색소((HbA1cㆍ적혈구의 혈색소인 헤모글로빈에 포도당이 붙은 상태. 7% 이하가 정상)가 1.03% 감소했으며, 특히 한국인은 평균 1.38% 감소해 가장 좋은 효과를 나타냈다.
DPP-4억제제가 췌장 내 베타세포 재생에도 기여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동물실험에서 베타세포 재생 효과가 입증됐으며, 인체에서의 효과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연관지표를 통해 이 가능성이 유추되고 있다.
하지만 DPP-4억제제는 2006년 상용화돼 아직 2년여 밖에 되지 않아 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지난 2년여 동안 위약(플라시보)에 준하는 안전성을 보이는 등 문제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검증기간 자체가 다른 약보다 짧은 것은 사실이다.
권대익 기자 dkwon@hk.co.kr
일러스트=김경진기자 jin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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