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편소설 '밤은 노래한다'
한국일보문학상이 올해로 제41회를 맞았다. 40년 넘게 한국 현대문학과 언제나 발걸음을 함께 하면서 우리 작가들이 이룬 문학적 성취를 격려해온 한국일보문학상은, 그 엄정함과 축제성으로 국내 최고의 전통과 권위를 자부한다.
문인들이 가장 받고 싶어하는 문학상이기도 한 한국일보문학상이 이제 마흔한번째 수상자를 기다린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10편의 작품 소개와 작가 인터뷰를 다섯 차례 나눠 게재한다. 기 수상 작가들이 말하는 한국일보문학상 이야기도 함께 싣는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은 절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습니다. 죽지 않을 사람처럼 행동하지요. 이 소설은 말하자면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이 품는 삶의 열망의 의미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과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김연수(38)씨의 여섯번째 장편소설 <밤은 노래한다> 는 1930년대 민족독립과 계급해방을 꿈꾸던 조선의 혁명가들이 서로를 일제의 첩자로 몰아붙이며 5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낳았던 '민생단 사건'이 배경이다. 밤은>
하지만 김씨는 "이 소설을 역사소설로 읽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왜일까? 한 여자를 사랑하며 세계의 변화를 열망하는 소설 속의 네 남자는 서로를 향해 총을 쏘며 파멸로 치닫는다. 하지만 이는 격렬한 이데올로기 세대인 386세대와 탈이념 세대 사이에 갇힌, 이 동안(童顔)의 1970년대생 소설가가 '세대적 정체성'을 확인해가기 위한 장치다.
"저는 어떤 도그마를 못견뎌하는 사람입니다. 기성세대의 가치관도, 386들이 품었던 열망도 믿지 못했던 회의적인 사람이지요"라고 말하는 김씨는 "그래서일까요. 어쨌든 '진리'는 있다고 믿는 제 세대는 저의 소설을 불편해하는 반면, 대의 따위는 믿지 않고 세계는 우연적이라고 믿는 저보다 어린 세대가 제 소설에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소설이 발표되자 평론가들은 '한국문학이 후일담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있던 작가가 여전히 세대적 감수성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상찬과 함께, 역사적 자료와 문학적 상상력을 결합시키는 그의 아키비스트(기록관리자)적 고투가 무르익었다는 칭찬을 쏟아냈다.
작품의 농밀한 언어는 소설적 서사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매우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시적 언어를 입말로 부드럽게 녹이는데 공을 들였어요. 시집도 꾸준히 읽었고요. 하지만 제 소설의 언어를 시적 언어라고 말한다면 시인들에게는 참 미안하지요"라며 김씨는 웃었다.
김씨가 임진왜란 당시 포로로 끌려가 세계를 유랑했던 조선인 형제의 귀향기를 다음 작품으로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고생고생하다 비참하게 끝나는 인생,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인생은 왜 이렇게 구성되는가를 묻고 싶습니다."
■ 작품 속 이 구절
"이제는 알겠다. 사랑은 여분의 것이다. 인생이 모두 끝나고 난 뒤에도 남아 있는 찌꺼기와 같은 것이다. 자신이 사는 현실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데츠트보라든가, 니콜라예프스크 같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낯선 단어들 속에서, 열병에 걸린 듯 현기증을 느끼며 사랑한다. 한번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맛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했던 것들이, 우리를 환상 속으로 이끄는 그 모든 낯선 감각의 경험들이 사랑의 거의 전부다… 바다 위로 길게 드리워진 달빛은 파도의 이랑을 따라 출렁이고 있었다. 바닷물은 차가웠으리라. 어디까지 들어갔는지 내게 보여주기 우해 오른손을 턱에 갖다 대던 정희의 눈에 축축하게 물기가 맺혔다. 그 때부터 우린 한 10분 정도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31쪽)
■ 김연수 프로필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성균관대 영문과 졸업.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 '강화에 대하여' 등을 발표하며 등단. 장편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7번 국도> <?A빠이, 이상> <사랑이라니, 선영아> , 소설집 <스무살>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등 발표. 나는> 스무살> 사랑이라니,> 가면을>
글이 안 써지면 토막잠을 청했다가 깨어났다 하며 아디이어를 궁리한다. 마라톤, 자전거, 스쿠터, 기타 등 '입문' 수준의 취미가 많다. 최근에는 야외캠핑에 관심을 갖고 있는 중.
이왕구 기자 fab4@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 소설 '그린 핑거'
"소설이 밤하늘의 별과 같이 고상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매일 식탁에서 먹는 빵과 같은 것이 소설 아닐까요? 속물들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 대중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말이 모욕적으로 느껴지지 않아요."
김윤영(37)씨의 세번째 소설집 <그린핑거> 는 '낭만적 사랑의 신화 벗기기'라는 한국소설의 한 흐름에 발을 담고 있는 작품집이다. 7편의 수록작 중 '블루오션 연애학' '너무 고결한 당신' 등 연작 5편은 한 평론가의 말대로 '인간의 냄새와 색깔을 지운 채 연애와 결혼을 자본주의적 교환논리로 파악'하는 남녀관계의 속물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그린핑거>
정이현, 이만교 소설의 인물들과도 닮아 있지만 <그린핑거> 의 주인공들은 좀더 냉소적이고 괴이하고 지독하다. 연작소설의 주인공은 26세의 여성 펀드매니저 지은과 36세의 출판업자 우인. "남자를 바꾸는 건 오일 교환과 같다. 그린핑거>
나는 연애의 경제학을 신봉한다"고 선언하는 뼛속까지 타산적인 지은과, 자신의 골수를 떼어주는 방식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지은과 정반대의 인물인 이타주의자 우인. 작가는 그들을 축으로 '21세기적 연애의 현상도'라 할 만한 이야기들을 펼쳐보인다.
20,30대 남녀들의 연애관, 결혼관을 너무 극단적으로 그린 것 아니냐는 물음에 김씨는 "현실은 더 적나라해요. 소설 속 남녀들은 여성 잡지의 '어찌하오리까' 같은 난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인물들"이라며 "이것도 많이 눈치 보고 쓴 것들"이라고 했다.
김씨의 소설에 육체성을 더하는 요인은 묘사의 디테일이다. 김씨는 자신을 "재능 혹은 감수성이 아니라 발품을 팔아 소설을 쓰는 살리에리와 같은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언청이 여인의 살부(殺夫) 스토리인 표제작을 쓰기 위해서 성형외과를 밥먹듯 드나들다가 그곳에서 팔자에 없는 '견적'을 받아보기도 했다고 한다. 취재노트만 40~50권이라는 그가 취재에 들이는 공력은 각주가 없이는 논리를 전개할 수 없는 현대사 전공 사회과학도로 체득한 것.
"나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리얼리즘 작가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싶기도 해요. 앞으로는 부동산 얘기도 쓰고 , 사교육 얘기도 쓰고, 독자들과 함께 늙어가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 작품 속 이 구절
"인생이란, 항상 올곧게 살도록 내버려두질 않는다고 우영은 생각했다. 젊었을 때는 인생의 방향이 약간 틀어져도 다시 돌아올 여지가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힘도 의욕도 사라져버린다. 집착과 헛된 욕심, 아집 등이 울타리를 치기 시작하는 법이다."(148쪽)
"어차피 동화 같은 사랑은 믿지도 않는다. 심장을 걸 수 있을 만큼 지독한 사랑도 꿈꾸지 않는다. 아무리 대단한 사랑도 그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아주 운이 좋다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덜 외로운 연애 정도는 어쩌면 가능할지 모른다. … 어차피 내 인생을 부정할 만한 사랑은 쉽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선택한 고독은 변치 않을 테니까."(167~168쪽)
■ 김윤영 프로필
1971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사회생활학과, 성균관대 대학원 사학과 졸업. 1998년 제1회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 소설집 <루이뷔똥> <타잔> , 평전 <박종철, 유월의 전설> 등 발표. 박종철,> 타잔> 루이뷔똥>
해방공간의 정치사를 연구하던 대학원 시절 "논문이 웃기니까 소설 한 번 써보라"는 선배들의 권유로 소설에 입문. 볼펜으로 초고를 쓰는 메모광. '세상에서 제일 말이 잘 통하는 친구'인 동갑내기 남편과 유치원생인 여섯살 난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 한국일보문학상과 나성석제 <제30회·1997년 수상>제30회·1997년>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은 1997년은 내가 '소설 쓰는 인간'으로서 자각을 하게 된 원년이다. 그 전해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다쳐 입원한 상태에서 교정을 보아 펴낸 첫번째 창작집 <새가 되었네> (하마터면 유고집이 될 수도 있었던)를 내고 소설가로 출발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십년 동안 시인에 익숙해진 데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새가>
이따금 시를 청탁하는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97년 새해를 맞아 목발을 집어던지면서부터 소설가로 자존, 인간으로 자립해야겠다는 의식이 머리에 들어찼다. 그러지 않고서 어쩌겠는가. 먹고 살아야 할진대는.
그런 내게 날씨가 쌀쌀해진 것을 실감하고 있던 어느날 오전 참에 한국일보에서 걸려온 전화는 내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았다. 얼마나 결정적이었는지 전화를 받으면서 긁적거렸던 머리가죽이 남의 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서너 해밖에 안된 사람에게 이미 29번이나 수상자를 배출한 유서 깊은 상이 주어진다는 것이 거짓말 같았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공동수상자가 있다는 게 아닌가. 나보다 소설 경력에서 한참 앞서 있는 윤영수 선생이었다.
그렇다면 이게 거짓말은 아니겠구나 싶으면서도, 그때부터는 상과는 별 인연이 없이 살아온 인간으로서 어떻게 표정관리를 해야 할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상금이 그 전해의 배가 되었다는 것도 더더욱 표정관리에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시상식까지 그 생각밖에 없었다. 관리해야 한다, 입이 찢어져라 웃다가 뱃속을 들여다보이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시상식 뒤 뒤풀이에 상금을 몽땅 써도 좋다.
시상식 당일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누구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거의 기억할 수 없다. 지금은 물론이고 시상식 다음날에도. 이 무거운 짐을 빨리 내려놓았으면 하고 죽어라 하고 기를 쓰던 건 잊을 수 없는 일이니 기억하고 있다.
나는 한국일보문학상이라는 영광의 무게를 잊어 보려고 있는 힘을 다해 소설을 쏟아냈다. 그것이 그 다음의 나를 만들었다.
성석제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