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이 오늘 내일 하는 위중한 환자에게 ‘위로’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지금 필요한 건 ‘긴급 처방전’이죠.”
한 증권업계 종사자는 28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증시가 연일 폭락하고 있는데도, “우리 경제는 아직 튼튼하다”며 뒷북 대응으로 일관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니 답답해서 잠이 오질 않는다는 것이다.
이날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를 찾은 한승수 국무총리의 언행도 실망을 안겨주긴 마찬가지였다. 한 총리는 증권업계 관계자들을 직접 만나 시장의 어려움을 듣겠다며 간담회를 자청했다.
그러면서 몇 차례나 “주가 폭락으로 고통 겪는 투자자에게 위로의 말씀을 보낸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때부터 ‘주가 3,000시대’가 머지 않았다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던 터라, 주가 폭락으로 투자액이 반 토막 나고 몸(지갑)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투자자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는 게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시장 상황이 위로의 말이나 전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는데 있다. 시장과 투자자들은 립 서비스가 아니라, 당장 환부를 치유할 수 있는 약을 요구하고 있다.
이날 업계 관계자들도 이구동성으로 “시장에 더 이상 돈이 돌지 않는다”며 퇴직연금에 대한 주식 투자 허용 비율을 높이고 중국, 일본과 통화 스와프를 시행하는 등의 긴급 처방을 요구했다.
하지만 한 총리는 “관계 부처에 법령 검토를 지시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는 증시 관계자들이 국가 부도 위험도를 나타내는 신용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이 높다며 걱정하자, “(높은 CDS 프리미엄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우리나라가 투자처로서 매력적이라는 뜻”이라는 엉뚱한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한 총리는 이날 거래소를 떠나면서 방명록에 ‘우과천청(雨過天晴ㆍ비가 지나가니 하늘이 맑다)’이라는 한자성어를 남겼다. 정부야 어서 빨리 비가 지나가기를 바라겠지만, 시장 관계자들은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옮겨 붙고 있어 장대비가 본격적으로 내릴 것을 걱정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건 비를 피할 수 있는 우산을 주는 믿음직한 정부다.
박상준 경제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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