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9년 런던에 앨비언제분소(Albion Flour Mills)가 들어섰다. 증기기관을 개량한 제임스 와트가 버밍엄의 공장주인 매튜 볼튼과 손잡고 세운 이 제분소는 1주일에 6,000부셸(약 169톤)의 밀가루를 생산했다. 놀라운 생산력으로 손쉽게 주변의 전통 방앗간들을 몰아냈지만 2년 만에 화재로 잿더미가 됐다.
당시 전통 방앗간들은 이 제분소를 '악마의 방앗간'으로 여겼고, 제분소 화재를 묘사한 당시 그림에는 제분소 꼭대기에 웅크리고 앉은 악마가 그려져 있다.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제분소 가까이에 있던 집에서 자랐다.
■블레이크의 시집 <밀턴> 의 서문에 '아득한 옛날 저들의 발길은(And did those feet in ancient times)'이란 시가 실려 있다. 2연으로 된 시의 첫 연을 서툴게 옮겨보았다. '아득한 옛날 저들의 발길은/ 잉글랜드의 푸른 산 위를 거닐고/ 신의 성스러운 양이/ 기쁨의 풀밭 위에 보였네./ 구름 낀 산 위로/ 성스러운 얼굴도 빛났을까?/ 여기 이 어두운 악마의 맷돌 사이/ 예루살렘이 세워졌을까?' 예수가 청년기에 영국을 방문했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산업혁명에 의해 피폐해져 가는 자연과 전통을 그리워한 시다. 밀턴>
■헝가리 출신의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 (1944년)에서 시장경제를 '악마의 맷돌(Satanic Mills)'이라고 불렀다. 사회적 보호막이 없다면 순식간에 인간(노동)과 자연(토지)과 구매력(화폐)을 황폐화하는 시장경제의 속성을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가령 노동력을 소유자 마음대로 처리하면 그것을 담고 있는 인간의 육체적ㆍ심리적 실체마저 하나의 소유물로 사회변화에 노출돼 희생되고, 자연은 오염되고 파괴된다. 구매력 수급을 시장 메커니즘에 맡길 경우 기업은 원시사회가 홍수나 가뭄에 시달렸듯 주기적 파산을 겪는다. 거대한>
■경제는 시장이 아니라 사회적 제약에 좌우됐다고 보는 그는 시장경제의 재앙 또한 경제를 다시 사회적 통제 안에 가두어 둠으로써만 피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 통제가 민주적 정당성을 가져야 함은 물론이다. 최근 미국 발 금융위기가 세계적 경제위기로 번지면서 그의 지적이 눈길을 끌고 있다. 국내에도 <칼 폴라니의 경제사상> (한울), <전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 외> (책세상) 등으로 소개됐다. 그런데 아직 시장만능주의의 파탄조짐으로 멈춰선 '악마의 맷돌'을 내던지기보다 부드럽게 새로 돌릴 준비에만 바쁜 듯하다. 전세계적> 칼>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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