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을 말로만 들었지만 그 때가 바로 지금과 같지 않았을까 합니다."
24일 주식시장은 공황 그 자체였다. 주가가 1,000선이 무너지고 40개월 만에 세자리 수를 기록한 이날 증권사 객장은 되려 고요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며칠 동안 걸려 오던 문의 전화도 오늘은 뚝 끊겼다"며 "객장을 찾은 투자자들도 굳은 얼굴로 입을 꾹 다물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시장이 블랙홀에 빠졌다"고도 했다.
위기가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오고 위기를 두려워하는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그 위기의 원인을 콕 집어 말하기도 힘들다. 전문가들조차 새로운 악재가 두드러지지도 않았는데도 주가는 추락하는 원인은 단 하나 뿐이라고 말한다. 공포감 그 자체라는 것이다.
시장의 패닉심리는 실물 경제의 위기가 닥쳤다는 데서 비롯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분석이다. 조익제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해 미국에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이후에도 전반적으로 괜찮았던 수출 등 실물 경제가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며 "기업들의 실적도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이런 부분이 증시에 반영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금융시장에서 시작한 '위기 바이러스'가 전 세계 실물 경제로 옮겨 붙었고 파키스탄, 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 등 기초 체력이 약한 일부 신흥 시장(이머징 마켓) 국가 들이 국가 부도(디폴트)라는 치명적 병에 걸릴 위기에 처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은 정말 안전한가"라는 불안감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심재엽 메리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우리나라의 신용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이 6.054%를 기록하며 전세계 평균(5.543%)보다 높아졌다"면서 "아시아 신흥국가 중 CDS가 상대적으로 높은 인도네시아(12.56%)와 베트남(9.94%)이 어려워지면 그 여파가 아시아 전체로 빠르게 퍼질 것이고 우리나라에 대한 시각 역시 더 나빠질 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CDS는 부도 위험을 방지하는 파생상품으로 CDS프리미엄이 높다는 건 그 만큼 부도 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심 팀장은 최근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의 가산 금리가 급등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여기에 은행채 문제,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대출 등 내부의 불안 요소도 문제다. 김지희 신영증권 연구원은 "지난 한 주 한국 증시는 헝가리, 그리스, 러시아 다음으로 큰 폭으로 주가가 떨어졌고 환율 변동성도 극에 달했다"면서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출 여건이 나빠지고 원달러 환율은 급등해 외채 부담을 키웠고 이것이 다시 한국의 신용 위험을 높였다"고 분석했다. 조익제 센터장은 또 "신용 경색 문제로 돈이 돌지 않으면서 기업들의 도산 위험도 가시권에 가까워 지는 것 같다"면서 "도산할 경우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 자체가 소용 없을 정도로 파장은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요소들이 불안감을 눈덩이 커지듯 키웠고 시장에서 누구도 주식을 사려고 하지 않게 됐다. 특히 수급 면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한국 증시에서 끊임없이 돈을 빼가는 외국인 투자자 문제다. 한국 관련 4대 해외 펀드에서 12주 연속 자금이 빠져 나가고 있다는 게 단적인 예다. 곽중보 하나대투증권 연구위원은 "전 세계 자금이 신흥 시장처럼 위험한 곳보다는 보다 안전한 곳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이 빠져 나간 자리를 투신이나 기관들이 채워줘야 하는 데 그마저도 녹록치 않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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