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무자비했다. 한국 정부가 외환위기를 막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과 피 말리는 구제금융 지원 협상을 하는 동안 우리의 국가신용등급을 마구 떨어뜨렸다. 불과 1~2개월 만에 국가 신용등급은 7단계, 10단계씩 내려가 우량등급에서 투기등급으로 전락했다.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와 S&P, 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는 우리나라의 환란 당시 저승사자나 다름없었다. 무디스는 1997년 11월 27일 이후 12월 22일까지 한 달도 안돼 A1에서 Ba1으로 7단계, S&P는 10월 24일부터 12월 23일까지 두 달간 AA-에서 B+로 10단계를 내렸다. 피치도 마찬가지였다.
▦ 무디스와 S&P가 신용등급을 낮춘 것은 월가 투자자들에게 "한국에서 자금을 빼라"는 사인이었다. 정부가 국가 부도를 막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동안 "한국 정부를 믿지 말라"고 외쳐댄 것이다. 우리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후에도 금융시장이 개선되기는커녕 더 나빠진 것은 무디스와 S&P의 '한국 때리기'가 컸다. 이는 IMF와의 협상에도 영향을 미쳐 우리 정부의 입지를 좁히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미국이 우리 정부를 궁지로 몰아넣고, IMF의 가혹한 협상조건을 빨리 수용하도록 신용평가회사를 '주구(走狗)'로 활용한 것 아니냐는 월가의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 무디스와 S&P는 기업은 물론 한 나라의 운명까지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월가의 투자자들은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을 투자의 중요한 근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환란 때 우리나라는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추락하면서 외자 조달이 꽉 막혀 국가부도 위기까지 몰린 쓰라린 경험을 했었다. 신용평가사들은 부실 징후를 간파해 조기 경보를 울려주기보다는 사고가 터진 후에야 등급을 일시에 떨어뜨려 불 난 집에 부채질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월가의 앞잡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 국가와 기업을 쥐락펴락해온 신용평가사들이 미국 금융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몰려 뭇매를 맞고 있다. 미 하원 의원들은 최근 개최한 청문회에서"신용평가회사들이 신용이 없다"고 성토했다. 무디스의 한 임원이 "수익을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고 실토한 내용이 공개되기도 했다. 돈과 탐욕에 눈먼 직원들이 부도 위험이 높은 증권까지 투자가능 등급을 매긴 도덕 불감증 사례가 숱하게 드러났다.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신용평가사의 엉터리 평가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감독 강화 방안이 도출됐으면 한다.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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