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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뱅크잡'

입력
2008.10.28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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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더 극적인 실화라면 큰 흡입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착각. 실화를 가공한 영화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1971년 영국에서 일어난 로이드은행 강도 사건을 재구성한 '뱅크잡'은 실화 영화의 함정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난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함정을 비켜가는 데 신경을 집중해서일까, 영화는 철저한 상업영화도, 비판적 정치영화도 아닌, 엉거주춤한 모양새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실화를 뼈대로 한 영화의 줄거리는 관객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하다. 영국 공주의 난교 현장을 한 흑인이 카메라로 포착하고, 그는 인권운동가 '마이클 X' 행세를 하며 사진을 방패 삼아 난행을 서슴지 않는다.

영국 정보기관은 우범자의 손을 빌어 사진이 보관된 은행을 털려 한다. 사채에 시달리던 테리(제이슨 스태덤)는 정보기관의 계략에 말려들고, 일당과 함께 인생역전을 위해 땅굴을 판다.

하지만 테리와 일당이 꿈을 이루려는 순간, 사진을 안전하게 확보하려는 정보요원과 사진을 되찾으려는 마이클 X, 경찰 상납 내역 장부를 은행에 보관했던 포르노제작업자 등이 살의를 뿜으며 이중 삼중의 압박을 가해온다.

극적인 실화를 얼개로 살을 튼실히 붙인 이야기의 밀도는 상당히 높고, 정보기관의 음모와 마이클 X 등의 위협 속에서 테리가 살 길을 모색하는 과정은 긴장의 강도를 점증시킨다.

방사선처럼 뻗어나가는 이야기를 하나로 수렴하는 연출 솜씨는 꽤 맵시있고, 세파에 무심한 듯하면서도 차가운 열정을 순식간에 폭발시키는 스태덤의 연기도 나무랄 데 없다.

하지만 향기 없는 꽃처럼 영화적 매력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고 이야기 전개가 지나치게 '쿨'하다는 점이 맹점. 영화는 영국 사회 지도층의 추문과 비리에 과도하게 집중하며 정치적 비판의식을 부각시키려 하지만 이는 정치와 무관한 테리의 행동 앞에서 금세 휘발된다.

사이사이 긴장감을 이완시키는 유머와 작은 반전들이 잔 펀치처럼 쏟아지지만 결정적인 한 방이 끝내 터지지 않는 점도 아쉽다. '노 웨이 아웃'과 '단테스 피크' 등의 로저 도날드슨 감독. 30일 개봉, 15세 관람가.

라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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