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건
대나무
잎사귀가
칼질한다.
해가 지도록 칼질한다
달이 지도록 칼질한다
날마다 낮이 다 하도록 칼질하고
밤마다 밤이 다 새도록 칼질하다가
십 년 이십 년 백 년 칼질하다가
대나무는 죽는다.
그렇다 대나무가 죽은 뒤
이 세상의 가장 마르고 주름진 손 하나가 와서
죽은 대나무의 뼈 단단하고 시퍼런
두 뼘만큼을 들고
바람 속을 간다.
그렇다 그 뒤
물빛보다 맑은 피리소리가 땅끝에 선다
곧 바로 선다.
대나무는 금욕주의자다. 절제에 관한 한 그를 따라올 자는 없다. 피골이 상접해서 단단한 뼈만 남은 대나무. 그는 적어도 자신의 꽃을 함부로 팔아먹지는 않는다. 세상의 모든 꽃들이 다투어 피어날 때, 개화의 욕망을 꾸욱 눌러참고 먼저 자신의 안을 텅텅 비워내는 연습을 한다.
대꽃은 백 년이 지나서야 핀다고 한다. 대개는 육십 년에 한 번씩 피는데, 그때를 넘기면 다시 육십 년이 지나서야 피어난다고 한다. 식물학자들은 그저 생명의 신비라고만 이야기한다는데, 시인은 거기에서 상상력을 풀어내고 있다.
단식 참선에 든 수도승처럼 일평생 자신의 욕망에 칼을 들이댔던 대나무는 그의 삶처럼 '가장 마르고 주름진 손'을 만나 피리가 된다. 칼을 음악으로 바꾸는 죽음이야말로 적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죽어 꺽이었으나 '물빛보다 맑은 피리소리'로 직립하는 존재, 대나무가 보여주는 입망(立亡)의 경지가 이렇게 아득하다.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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