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4,800만 인구 중 최저생계비 이하 생활을 하는 빈곤층이 536만 명(2006년 기준)이나 된다는 통계수치가 새삼스럽게 마음을 쳤다. 최근 한국일보가 내보낸 기획 <경제위기, 벼랑 끝 몰린 사람들> 을 통해서다. 그 자체로 새로운 뉴스는 아니지만, 기한을 예측할 수 없는 경제 빙하기가 임박한 듯한 상황에서 결코 예사롭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경제위기,>
가난한 이들의 팍팍한 삶, 어디 기댈 곳 하나 없다는 절망감이 기사에 소개된 그들의 삶 곳곳에서 묻어났는데, 이제 닥칠 깊고 긴 불황의 터널을 생각하면 그 절망의 끝은 어디인지, 과연 이들이 절망에서 벗어날 수나 있을지 짐작도 할 수 없다. 홍수가 나면 맨 먼저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물가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반응도 기대 이상이었다. 솔직히 기획을 논의할 때만해도 시간에 쫓겨 급하게 진행한 데다, 어려운 사람들 얘기가 어제오늘 일이냐는 냉소적 시각도 있으리라 짐작해, 별 반응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첫 회부터 신문사 안팎의 지인들은 물론, 독자들의 반응이 꽤 좋았다. 신문을 평가하는 사람들은 기획의도가 좋다고 했고, 독자들은 기사에 소개된 사연을 보고 돕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아마도 다들 이런 기사에 목말라 했던 것 같다. 연일 주가 하락이다, 환율 폭등이다, 집값 급락이다 하면서 기업과 중산층 얘기만 대서특필되는 가운데, 그들 말대로 '주식도 집도 없는' 서민들, 경제난 속에 힘겨운 삶을 '살아내는' 가난한 이들을 조명하는 기사는 정작 드물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기획을 통해 소개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최저생계비만을 기준으로 해도 536만 명 가운데 몇 사람의 사연일 뿐이다. 어쩌면 소개된 이들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처지에서 놓인 사람이 많을 것이다.
기획기사가 나가는 사이 한편에선 쌀 직불금 부당 수령 기사가 연일 지면을 장식했다. 여야의 정치적 계산이 작용하면서 파문이 커지는 양상이다. 28만 명에 이른다는 부당 수령자의 신원과 사실여부 확인 작업이 간단해 보이진 않지만, 이번에도 여지없이 드러난 것은 사람들의 지칠 줄 모르는 탐욕이다.
농업개방으로 어려워진 농민들을 돕기 위해 도입된 쌀 직불제가 도시에 사는 부재지주들의 세금절감이나 공직출세의 도구로 이용될 줄을 대다수 서민들이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었으랴. 매번 제도의 허점을 정확히 찾아내 제 이익으로 돌리는 그들의 능력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아흔아홉 섬 쌀을 가진 부자가 백 섬을 채우려고 한 섬 가진 사람에게 내놓으라고 한다는 옛말이 그르지 않은 현실이다.
그런데 이 같은 불평등과 부조리가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조금이나마 개선될 수 있을까. 많은 서민들이 그 같은 바람으로 표를 몰아주었건만, 불행하게도 그와 그의 참모들이 신봉하는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가 그 해법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신자유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맹위를 떨쳐온 지난 20여년 간, 그 주의의 발원지이자 주도자인 미국과, 이를 추종해온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사회불평등이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심해진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미국 발 금융위기가 세계경제를 공황상태로 몰아넣은 현 상황에서도 '시장은 선이고, 규제는 악'이라는 이분법적 도그마에 빠져 아무런 성찰의 기미도 찾아볼 수 없으니, 이들에게 유럽식 복지국가 얘기까지 꺼내는 것은 공연한 정력 낭비일지 모르겠다.
김상철 사회부 차장 sckim@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