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조치는 그야말로 ‘비상’조치다. 기준금리를 한번에 0.75%포인트나 조정한 것도, 은행채를 매매 리스트에 넣은 것도 모두 처음 해보는 일이다. 그만큼 충격을 노렸다고 할 수 있다. 온통 공포에 짓눌린 시장을 더 큰 충격으로 정신차리게 하고자 했던 셈. 한은과 시장의 본격적인 ‘기 싸움’이 시작됐다.
■ 시장도, 한은 내부도 놀란 파격 금리인하
이날 아침까지도 0.75%포인트 인하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시장은 물론, 한은 내부에서조차 “최대 0.5%포인트까지는 예상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라며 놀랐다.
인하 결정의 과정 역시 전격적이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한은은 금리인하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인하 자체가 채권시장에서 자본유출을 초래해 환율을 끌어올리는 문제가 생긴다는 점을 지적하곤 했다. 국장급 간부들조차 전날 오후에서야 긴급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았을 정도였다.
거꾸로 말하면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고 심각하게 돌아갔고 이 같은 상황인식이 빠르게 퍼졌다는 의미다. 이대로 놔뒀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비상조치를 이끌어냈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세계 각국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 글로벌 금융불안은 수그러들 기미가 없고, 국내 금융시장도 총체적 난국인 상황이다. 지난주 말 주가는 1,000선 아래로 고꾸라졌고 환율은 연일 외환위기 후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달초 금리를 0.25%포인트 내렸는데도 오히려 시중 대출금리는 계속 오르면서 중소기업과 가계의 부담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금리 전격 인하의 요인중 하나다. 지난주 발표된 3분기 성장률 수치 역시 3%대로 추락하면서 금융위기가 실물로 이미 옮겨왔음을 뚜렷히 보여줬다.
한은으로서는 무엇보다 금리를 파격적으로 낮춰 시중금리의 방향을 아래쪽으로 바꿈으로써 가계와 기업의 이자부담을 덜고 급격한 내수경기 침체를 막아보고자 한 셈이다. 이성태 총재는 이날 “경제활동이 상당히 빠르게 둔화하고 있고 고용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으며 가계나 중소기업의 원리금 상환부담이 많은 상황으로 봤다”며 “따라서 한은이 더욱 확실하게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 유례없는 패키지 조치
비상조치는 기준금리 인하에 그치지 않았다. 금통위는 이날 공개시장조작 대상 증권에 은행채와 특수채를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역시 예상 밖의 조치다. 은행에만 특혜를 준다는 논란이 높았고 이 총재도 지난주 국정감사에서 “은행채 전부를 사 줄 수는 없다”고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결국 현실적 급박함이 원칙을 돌려세운 셈이다.
이 총재는 “매입 규모는 5조~10조원 가량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산업은행채권을 포함한 특수채는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상황 변화에 따라 대처할 수 있도록 선제적으로 편입했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을 위한 저리대출 자금인 총액한도대출 금리도 0.75%포인트 낮춰 한계 선상에 있는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을 덜어주도록 했고 키코 피해 기업이나 환율 상승으로 엔화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을 위해 외화대출 규정도 대폭 완화했다. 이 역시 비정상적인 자금난으로 벼랑 끝에 몰린 중소기업을 구제하려는 조치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금융연구실장은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내리는 동시에 다른 유동성 공급 대책들을 패키지로 내놓음으로써 시장 심리의 급격한 악화를 막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가계ㆍ중소기업 등의 금리부담을 직접적으로 줄이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용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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