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1992년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건너온 재중동포 김영숙(가명ㆍ35)씨. 94년에 황모(52)씨를 만나 결혼할 때만 해도 삶이 그렇게 팍팍하진 않았다. 부부가 조그마한 종이박스 공장을 꾸려가며 한 푼 두 푼 저축도 했다.
하지만 1997년 말 몰아 닥친 외환위기는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갈수록 장사는 되지 않았고, 공장에는 종이박스 재고만 쌓여갔다. 그러다 보니 기계 구입에 썼던 대출금을 갚을 길이 막막했다. 술 먹는 날이 늘어가던 남편이 손찌검을 하기 시작했고, 결국 두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채 이혼을 했다.
그래도 큰 아이(13)는 나은 편이다. 둘째 준혁(8ㆍ가명)이가 문제였다. 낳을 때만해도 멀쩡했던 준혁이가 커가면서 얼굴 모습이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병원에 데려가니 '연골무형성증(軟骨無形性症)'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대개 만 2세가 지나면서 짧은 팔다리와 큰 머리, 튀어나온 이마 등의 징후를 보인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키가 자라지 않는 희귀병이라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충격에 그냥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연골무형성증은 성장판에서 연골에 이상이 생겨 뼈의 성장이 이뤄지지 않는 선천성 질병이다.
"이런 희귀병이 준혁이에게 찾아올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어요." 키가 아무리 커도 평균 131㎝에 불과하다니,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을까. 시름에 빠진 영숙씨 가족에게 희망의 씨앗을 나눠준 곳이 바로 GM대우 한마음재단이다.
준혁이는 이미 성장판이 닫혔기 때문에 사실상 성장이 멈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평생을 난쟁이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수술을 하더라도 끔찍한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정강이 뼈와 허벅지 뼈를 잘라 그 틈새를 조금씩 늘여나가는 수술이기 때문이다. 이런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한마음재단은 일단 준혁이 수술비로 500만원을 지원했다.
준혁이는 작년 4월 말 정강이 뼈를 늘리는 수술을 받았고, 하루에 1㎜씩 뼈를 늘리는 교정기를 착용해 이미 무릎 아래 부분에서 키를 10㎝ 키웠다. 올해 7월 중순에는 허벅지 뼈 수술도 했다.
6개월 이상 교정기를 착용해야 하는데, 현재 수술 전보다 8㎝가량 키가 자랐다. 앞으로 2㎝만 더 자라면 20㎝ 정도 키가 크는 셈이다.
"고마운 마음이야 어떻게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 동안 준혁이가 다른 아이들의 놀림을 받을 때면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어려웠던 당시를 떠올리는 영숙씨의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맺히기 시작한다.
돈도 돈이지만, 준혁이가 겪는 고생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몸에 박힌 쇠붙이, 인위적으로 뼈를 늘여가는 과정, 주위의 따가운 시선들…. 어느 것 하나 힘들지 않은 게 없다. 앞으로도 문제다. 다리 교정이 끝나는 대로 내년 하반기에는 늘어난 다리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팔을 늘이는 수술도 해야 한다.
다행히 고대구로병원의 배려와 한마음재단의 수술비 지원으로 돈 걱정을 덜었다. 방안에 틀어박혀 외톨이로만 지내던 준혁이의 표정도 많이 밝아졌다. 교정기를 착용한 탓에 아직은 학교를 다니기가 어렵지만, 교육청에서 지원해 준 컴퓨터로 집에서 정규 교과과정을 배우고 있다. 팔 수술이 끝나면 야외 활동도 편하게 할 수 있다.
엄마가 유난히 애정을 쏟은 탓인지 준혁이에겐 오직 엄마 뿐이다. "커서 돈을 벌면 엄마한테 차를 사줄 거예요. 엄마가 원하는 건 다 사줄 거예요." 자동차를 유난히 좋아하는 준혁이는 엄마가 자신 때문에 많이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형은 동생한테만 신경을 쓰는 엄마가 미운 눈치지만, 지금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게 영숙씨 마음이다.
급한 불은 껐지만, 앞으로 살아갈 일은 막막하기만 하다. 준혁이 뒷바라지에 하루 생활을 포기하다 보니 식당일 등 돈벌이 생각은 꿈도 못 꾼다.
정부가 기초생활보호대상자에게 지급하는 월 45만원과 인근 교회에서 지원해주는 약간의 생활비, 전 남편이 가끔씩 부쳐주는 수십 만원이 수입의 거의 전부다. 월세 30만원과 공과금, 식비 등으로 순식간에 빠져나가기 때문에 아이들 좋아하는 외식 한번 제대로 하기 힘들다.
"준혁이가 잘 크기만 바랄 뿐이에요." 돈 얘기가 나오자, 영숙씨는 고개를 떨군 채 말을 다른 데로 돌렸다. GM대우 한마음재단은 준혁이가 힘든 과정을 잘 극복하고 성인이 되면 인천 부평공장에 취업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어머니에게 효도하고 싶다는 준혁이 소원도 들어주고, 재단 사회공헌 활동의 좋은 본보기가 되겠다는 판단에서다. 재단 관계자에게서 준혁이 취직 얘기가 나오자, 인터뷰 내내 표정이 없던 영숙씨 얼굴에 모처럼 환한 웃음이 번져갔다.
■6GM대우 한마음재단
GM대우 한마음재단은 다른 대기업들이 만든 사회공헌 재단보다는 크기가 작다. 하지만 임직원들의 참여도는 다른 어떤 재단보다 높은 편이다. 외환위기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과 복직을 경험한 탓인지 '나누는 삶'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한마음재단은 2005년 7월 설립됐다. 대부분의 재단이 회사 출연금으로 만들어진 것과는 달리, 임직원들의 기부금을 토대로 설립된 것도 특징이다.
재단의 이은구 사업팀장은 "외환위기 이후 1,700여명이 정리되는 등 많은 아픔을 겪었던 만큼, 직원들 스스로 봉사활동에 적극 나서자는 차원에서 설립됐다"고 소개했다.
GM대우의 봉사활동은 크게 기부와 자원봉사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기부 프로그램은 임직원이 재단에 1,000원 이상의 금액을 기부하면, 회사에서도 두 배 가량의 금액을 지원해 사업비를 마련하는 형태다.
이 프로그램에 가입한 임직원들은 2005년 1,767명에서 2006년 3,915명, 2007년 4,500명으로 늘었고, 올해엔 5,000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GM대우 전체 근로자(약 1만,5000명)의 3분의 1 수준이다.
임직원 자원봉사는 봉사 활동과 기부가 합쳐진 프로그램이다. 예를 들어 마음이 맞는 임직원들끼리 팀을 이뤄 장애인 시설이나 보육원에서 연간 50시간 이상 봉사할 경우 회사가 해당 시설에 일정 금액을 기부하는 방식이다.
이 프로그램 참여 직원은 2005년 940명에서 올해엔 이미 3,000명(270팀)을 넘어섰다.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각 시설에 지원된 금액은 올해에만 6만7,500달러. 달러로 기부금이 정해지는 것은 이 프로그램이 GM그룹 전 계열사에서 동일하게 시행되기 때문이다.
기부와 자원봉사 프로그램으로 모아진 돈(올해 10억원 규모)의 40% 가량은 자동차 회사답게 차량기증 사업에 쓰인다. 올해에는 '마티즈' 등 경차 40대를 복지기관에 전달했다. 이밖에 소외계층 건강보험료 및 진료ㆍ수술비 지원 등 불우이웃돕기 비용으로 쓰인다.
아직은 재단의 사업 규모가 작은 게 아쉽다. 현재 예측대로라면 2020년엔 지금의 두 배 수준인 20억원 정도가 기부 활동에 쓰일 전망이다. 웬만한 대기업 사회공헌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값어치는 다른 무엇에도 견줄 수 없다.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누구보다도 헌신적인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GM대우 한마음재단의 나눔 목적이다.
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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