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지원(37)씨가 그림책을 냈다. <내 영혼의 그림여행> (한겨레출판 발행). 붓 대신, 차지고 예민한 언어로 선을 긋고 색을 입혔다. 파울 클레와 강요배와 케테 콜비츠와 일리야 레핀의 회화가 캔버스다. 정씨는 거기다가 자신만의, 그러나 공감할 수 있는 투명한 목소리를 한 겹 덧칠한다. 침묵 속에 잠겨 있던 그림들이 그 덧칠에 생기를 얻어 슬며시 말을 걸어온다. 내>
"그림은 시와 참 많이 닮은 것 같아요. 한 편의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화가들이 얼마나 많이 절망하며 번민의 시간을 보냈을까요. 그렇게 압축된 한 편의 그림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때론 치유해 주잖아요."
고교시절 미대 진학을 진지하게 고민했다는 그는 이 책에서 유별난 그림 사랑을 숨기지 않는다. 그에게 그림 감상은 "여행인 동시에 묵상"이고 "통각이 마비된 세상 속에서 고통과 절망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드는 스승"이다. 그리고 그런 행복을 나누고 싶어 이 책을 냈다고 했다. "자신의 그림이 부잣집 거실에 걸려 있는 게 고흐나 샤갈의 바람이었을까요. 어렵다고, 멀리 있다고 느끼는 그림을 모두가 편하게 감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시대와 장르, 동서를 넘나들던 그의 그림 이야기는 한 지점에서 오래 동심원을 그린다. 비교적 가까운 시대에 그려진 이종구, 신순남, 강요배의 회화들. 살천스럽던 시절의 분노를 뜨겁게 토해낸 작품들이다. "내가 잘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따로 있는 것 같아요. 1980년대 한국회화와 19세기 유럽 회화예요. 사람들이 용감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죠. 저항도, 사랑도 뜨거웠던."
그렇게 '뜨거웠던' 시절, 그가 썼던 시 중 하나가 안치환의 노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됐다. 아린 서정과 저항의 정서가 뒤섞인 그의 시집 <내 꿈의 방향을 묻는다> (2003)에 수록된 시의 색감이 이 책의 그림들에서도 느껴진다. 하지만 이 에세이집은 무겁지는 않다. 달빛 아래 피어나는 사랑을 담은 신윤복의 '월하정인', 김수정의 애니메이션 '아기 공룡 둘리'도 책의 페이지를 채운다. 무엇보다 시인 특유의 글맛이 살아 있다. 내>
"솔직히 전문가가 읽어도 어려운 책이 너무 많잖아요. 전 그냥 제가 느끼는 즐거움을 전해주고 싶어요. 그래서 조카 손 잡고 미술관 가는 상상을 하며 쓴 글이랍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사진 류효진기자 jskn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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