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허(虛)를 찔렀다. 외국인의 무차별 매도공세, 주가연계증권(ELS) 매도물량 폭주에 따른 매수세 실종, 각종 해외발 악재와 루머가 뒤범벅이 되면서 패닉(공황) 심리가 시장에서 이성의 씨를 말려버렸다. 배후조종은 끈질기게 증시의 발목을 잡는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였다. 병의 뿌리를 뽑지않는 한 환부는 계속 곪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오전만해도 감내할 수준이었다. -20포인트 안팎을 오가는 코스피지수의 행보는 전날 뉴욕 증시의 급락(2~4%) 여파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점심 이후 하락 폭을 키우더니 오후 2시 사이드카(거래 일시정지)가 발동되면서 돌연 폭락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연중 최저점을 깨더니 한때 1,100선도 붕괴됐다. 오후 2시27분부터 2분간 낙폭은 100포인트이상(8%이상)이었다. 장 막판 개인과 연기금이 '사자'에 나서지 않았다면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새 복병, 신흥시장과 유로경제권 위기
이날 새로 등장한 복병은 신흥시장과 유로 경제권의 위기였다. 오후 들어 아르헨티나 디폴트(채무불이행)설이 외신을 통해 증시로 스며들면서 폭락을 부추겼다. 아르헨티나가 10년 만에 두 번째 디폴트 사태를 맞을 것이란 우려는 즉각 공포로 변질됐다.
더구나 아이슬란드 최대 은행인 카우프싱이 일본계 채권이자를 지급하지 못할 것이란 '유럽계 은행 파산설'과 아울러 유로화가 급락하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됐다. 때마침 이웃나라 일본의 닛케이지수도 폭락(6.7%)했다. 김정일 사망 루머까지 찬물을 끼얹자 불안심리는 극에 달했다. 장 초반 순매수세를 보였던 기관도 매물을 쏟아냈다.
외국인의 매도 공세는 그칠 줄 몰랐다. 이날 외국인은 3,563억원 규모의 국내 주식(코스피 기준)을 내던졌다. 이 달 들어 하루만 빼고 모두 '팔자'로 일관했다. 규모만 무려 4조원 가까이 된다. 유로 경제권 위기에 대한 우려가 한국 증시 탈출 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이치증권 보고서도 악재
또 이날 도이치증권의 "코스피지수 목표치 1,020으로 하향 조정. 한국의 GDP성장률이 바닥을 칠 때까지 매도 지속해야 한다"는 보고서도 악재로 작용했다. 국내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지속되면서 원ㆍ달러 환율이 불안한 모습을 보인 것도 외국인 매도를 촉발시켰다.
ELS 매도물량 역시 새로운 부담으로 떠올랐다. 주가가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 원금이 보장되지만 그 이하로 떨어지면 운용회사의 원금 보장 의무가 사라지는 특징 때문에 낙폭이 커지면 보유 주식을 팔아치우게 되는 구조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날 대형주의 폭락이 심했던 것도 이를 기초자산으로 삼았던 ELS 관련 매도물량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으로 풀이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주가나 지수가 더 떨어지면 더 많은 ELS 매도물량이 증시를 짓누를 수 있다는 점이다.
◇전망이 무의미
우리 증시는 어느것 하나 해결된 것이 없는 상태에서 악재만 켜켜이 쌓이고 있다. 외국인과 새롭게 부상한 ELS 매도물량이 매도가 매도를 부르는 악순환으로 번지고 있고, 확인되지 않은 소식 등 조그만 대외 변수도 시장을 휘청거리게 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침체, 기업의 실적악화 등 국내 상황도 녹록치 않아 해외쪽 안정에 그나마 의지해야 하는 형편이다.
현재로선 전망이나 바닥을 논하기도 어렵다. 최근 시장엔 1,000 붕괴에 이어 800선까지 위협 받을 수 있다는 비관이 힘을 얻고 있다. 오현석 삼성증권 투자정보파트장은 "각종 지표와 여건을 감안해도 우리 주가가 싸진 건 맞는데, 하루 변동폭이 100포인트 이상이나 되고 사이드카도 수시로 발동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라 전망이 무의미하다"며 "이날 같은 장세라면 바닥이 1,000선이라고 해도 황송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