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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어른의 끄나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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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어른의 끄나풀'

입력
2008.10.23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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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논현동 고시원에서 묻지마 살인이 일어난 20일 강원도 강릉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어찌 보면 이보다 더 끔찍한 사건이 터졌다. 학생회장이 조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후배를 때려 죽게 만들었다.

논현동 사건이 스스로를 무가치하다고 느낀 낙오자 어른이 일으킨 것이라면 강릉 사건은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어른들이 주입한 가치관을 절대적으로 신봉한 '모범' 청소년이 벌인 일이다. 겉모습은 극단적으로 다르지만 스스로의 가치를 스스로 알지 못하고 남들의 평가 속에서만 자존감을 가진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모습은 동전의 양면이다.

조회란 단체활동이니 참여가 바람직하지만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이 학생회장은 교사들이 시키는대로 따르는 것이 학생의 임무라고 배웠을 뿐 사람됨이 무엇인지 생각할 줄 몰랐다. 사건이 터진 후 학교측은 학생회장을 감싸주려고 우발적인 사고인양 꾸며대려고까지 했다니 이 사건에는 한국의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가 다 들어있다. 학교는 어떤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말아야 하는지를 전혀 모른다. 공부를 가르치고 학생을 통제하는 것을 교육이라고 생각하고 여기에 순응하는 학생을 우수한 학생으로 평가한다.

친구 감독하는 학생회장

이 학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아직도 여러 학교에서 조회란 집단적인 복종심을 강요하는 양식으로 존재한다. 또한 학교가 학생들을 다루기 위해 학생들 자체를 지배와 감시 감독의 상하관계로 나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학생회장 제도가 되어버렸다.

학생회장은 말로는 학생들의 자치회를 이끄는 사람이고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생들의 자발적인 직접 투표로 선출된다. 학급회장부터 전교회장까지 그렇게 뽑히지만 민주적인 것은 딱 여기까지이다.

일단 학생회장이 되면 하는 일은 주로 교사의 역할 대행이다. 학급에서는 교사가 맡아야 할 출석부를 챙기거나 교사의 심부름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거나 도와야 한다. 교사가 없으면 학생들을 조용히 시키는 것도 학급회장의 몫이 된다. 전교 학생회장의 역할도 학교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싶은 일을 대행하는 것이 많다. 이렇게 학생회장이 되는 이들에게 중고등학교에서는 생활기록부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준다. 성적으로 학생 대표의 관리가 이뤄지니 자치회 대표로서 독립성이 확보될 리 만무하다.

고등학교에서 이와 유사한 제도로 선도부라는 것도 있다. 학생들의 머리 옷차림 생활태도를 잡아내는, 일종의 학생 자치경찰이다. 선도부원이 되면 역시 생활기록부 점수를 더 받을 수 있다. 학생으로 하여금 또래의 생활태도를 감시하게 하면 또래의식이 생겨나기 힘들다. 아무리 좋게 말해도 어른의 끄나풀로 청소년을 쓰는 것이니 이렇게 비교육적인 일이 어디 있을까.

초등학교, 회장제 없애야

초등학교에서 학급 회장이 하는 것은 중고등학교의 선도부와 학생회장이 하는 것을 합친 경우가 많다. 교사에 따라서는 지도력을 연습해보라고 골고루 돌아가면서 회장을 시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교사들이 아무 생각 없이 자리를 비울 때 회장에게 떠드는 사람 이름을 적게 하고 교사의 심부름을 대행케 한다. 민주주의를 체험하기는커녕 어린이의 심성을 파괴하는 것이 초등학교 학생회장 제도이다.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야 할 강릉의 학생회장은 달리 보면 은폐된 사이비 학교 민주주의가 빚어낸 괴물이자 희생자이다. 이제 이런 교육은 그만 둘 때가 되었다.

먼저 초등학교에서 회장을 뽑는 것을 완전히 없애야 한다. 초등학교 과정의 어린이는 누구나 동등하게 교사로부터 아낌없는 보살핌을 받아야 할 나이이다. 고등학교에서 선도부라는 것을 없애야 한다. 중고등학교에서 학생회장은 말 그대로 자치회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청소년의 심성을 파괴하는 일은 이제 그만 하자.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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