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KO(환 헤지 통화옵션상품) 사태는 누구의 책임으로 봐야 할까요?", "달러 가치가 하락하는데도 왜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떨어집니까?"
이 달 13일 밤 10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6층 회의실. 국제경제 전문가인 SK경제연구소 왕윤종 상무의 3시간에 걸친 강의가 끝나자 검사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미 금융위기 처리과정과 M&A'라는 주제의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은 다름아닌 검찰 내 금융증권범죄연구회 소속 검사와 수사관들.
전국 검찰청에서 30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한 연구회가 격주로 개최하는 정기모임에 이날은 32명의 검사와 수사관이 참석했다. 왕 상무의 강의에 대한 질의응답에 이어 금융수사 기법과 관련한 열띤 토론이 이어져 밤 11시가 다 돼서야 끝났다.
■ 수사하려면 공부해야
공부하는 검사들이 늘고있다. 고시와 사법연수원을 거쳐 공부라면 신물이 났을 법한 검사들이 '스터디 그룹'을 만들고 다시 두툼한 책을 꺼내 들었다. 검찰 내에 '전문지식연구회'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스터디 그룹만 모두 27개.
평소에는 스터디 그룹별로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서로의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일과 후나 휴일에는 정기적으로 세미나와 특강을 열어 수사실무와 법이론, 당면한 시사문제에 대한 심층토론을 진행한다.
평소에도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검사들이 사서 고생을 하는 이유는 뭘까. 더러는 개인적 관심을 이유로 드는 검사도 있지만 대부분은 "갈수록 지능화하는 범죄 양상에 대처하기 위해"라고 답했다.
금융증권범죄연구회 회장을 맡고있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 봉욱 부장검사는 "금융ㆍ조세 관련 범죄 수사에는 최신 금융기법이나 복잡한 관련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며 "고시책과 연수원 실무라는 과거의 지식만으로는 첨단범죄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범죄수법이 나날이 정교해지는 만큼 수사기법 또한 첨단으로 준비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점점 어려워지는 수사환경도 검사들이 다시 공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강찬우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은 "과거에 비해 혐의를 부인하거나 묵비권을 행사하는 피의자가 늘고 있으며 법원도 피의자 진술이나 수사기관의 수사기록보다는 물증을 우선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정교한 계좌추적이나 첨단 과학수사 기법을 통해 물증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검찰에게 주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달라진 수사환경을 따라잡기 위해서라도 검사들 스스로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설명이다.
■ 스터디 학습을 실전으로
마음 맞는 사람끼리 개별 동호회 수준으로 운영되던 연구 모임이 전문지식연구회로 발전한 것은 2006년부터. '공부하는 검찰, 연구하는 검사'를 기치로 내건 대검찰청이 일선 검사들의 자발적 연구모임을 검찰의 공식활동으로 장려하며 '공인 스터디그룹'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연구회는 금융증권범죄연구회을 비롯해 조세범죄연구회, 공정거래범죄연구회, 강력범죄실무연구회 등 실전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수사 실무 관련 연구회다.
금융증권범죄연구회의 경우 5월 중순 '재벌 테마주'를 주제로 연구활동을 벌인 직후 구본호ㆍ박중원씨 등 재벌가 자제들이 연루된 주가조작 의혹 수사에서 수사검사들이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이밖에 영미형사법아카데미나 공법연구회, 독일법연구회 등 이론적 접근에 충실하는 모임도 있다. 봉 부장검사는 "전문지식연구회의 활동은 자칫 경직되기 쉬운 검찰 조직에 신선한 자극제가 되고 있다"며 "또한 이들의 활동은 검찰 외부의 목소리를 포용할 수 있는 중요한 창구도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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