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말았다. "아무리 절박해도 금융 규제만큼은 손 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투기지역 해제라는 간접적인 방식을 택했다지만, 사실상 금융 규제 완화나 다름없다. 한쪽에서는 건설사 부실을 정부가 떠안아주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규제를 풀어 건설사 부실만 더욱 키우려 한다는 비판이 들끓는다. 부동산 부실 확산에 따른 금융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이번 대책이 오히려 금융 불안을 더욱 키울 것이란 지적도 상당하다.
금융 불안 더 키운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서 우리나라가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총부채상환비율(DTI)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등 금융 규제 때문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이명박 대통령조차 "한국이 금융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다른 국가들에 비해 충격이 비교적 적다"고 말했을 정도다. 부동산 부실이 금융 쪽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방파제 역할을 해온 셈이다.
이런 점 때문에 DTI, LTV 규제를 직접 손 대지는 않았지만, 대신 꺼내 든 카드가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 해제다. "합리적으로 해제하겠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이미 방향은 상당 수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를 해제하는 쪽으로 잡힌 듯하다.
투기지역에서 풀리면 지금은 집값의 40%(LTV)까지 대출이 가능하지만 60%로 대폭 확대된다. 더구나 DTI 40% 규제는 완전히 풀린다. 예를 들어 6억원 짜리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 때 소득 수준에 따라 최대 2억4,000만원(40%)까지만 대출이 가능했지만, 투기지역에서 풀리면 소득과 무관하게 3억6,000만원(60%)까지 대출이 가능해진다. 여기에 주택담보대출을 1건만 받을 수 있도록 한 조치도 없어진다.
정부는 "잠재 수요가 없기 때문에 투기지역을 해제한다고 대출이 급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단기적으로는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사태가 부지불식간에 찾아왔듯, 한번 방파제가 뚫리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심지어 업계 내부에서도 이런 우려가 나온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부사장은 "이번 대책은 효과는 제한적인 반면 향후 주택시장이 정상화하거나 활황세로 접어들 경우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특히 정부가 가계 부채를 더 부추겨 금융 불안을 야기한다는 논란 여지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도덕적 해이 부추긴다
유동성 지원의 대전제는 건설사들의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이어야 했다. 부실을 잔뜩 키워 놓은 건설사 스스로는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데, 정부만 애가 닳아서 대규모 유동성 지원을 함으로써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만 부추길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물론 채권금융회사들로 구성된 대주단이 등급(A~D) 별로 차등 지원을 하고 구조조정을 독려하겠다는 내용이 대책에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분양가 자율 인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친다는 평가다.
송준혁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미분양이 속출하면 업계가 자율적으로 분양가를 내리는 게 상식"이라며 "그런 노력조차 없는 건설사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시장 왜곡만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토지공사를 통해 건설사들이 보유한 토지를 매입해주는 것 역시 건설사는 물론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은행들 입장에서는 토지 담보만 있으면 건설사의 신용과 무관하게 아무런 위험 없이 대출을 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송 연구위원은 "어차피 담보가 된 토지를 정부가 매입해 줄 것이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땅 짚고 헤엄치기 식 영업을 하게 될 것"이라며 "이것이 결국 은행의 신용평가기능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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