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셋만 보고 살았던 월자야! 애들 두고 어떻게 세상을 떠날 수가 있느냐."
20일 서울 논현동 D고시원에서 정모(30)씨가 휘두른 흉기에 변을 당한 중국동포 이월자(50ㆍ여)씨의 형제자매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통곡했다. 이씨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 용산구 순천향병원 영안실을 찾은 동생 순자(46)씨는 "노는 날도 없이 일만 열심히 하던 언니에게 이게 무슨 날벼락"이라며 울부짖다 끝내 실신했다.
숨진 이씨는 중국 헤이룽장성에 살다 남편과 딸 등 일부 가족과 함께 2년 전 국내로 들어왔다. 이씨는 "중국에 남겨둔 자녀들에게 돈을 부쳐야 한다"며 국내 가족과도 떨어져 고시원에서 홀로 지내며 식당 등에서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해 왔다.
그나마 이씨에게는 중국에서 함께 입국한 5남매 형제자매가 큰 의지가 됐다. 3년 전 한국인과 결혼해 입국한 이씨의 딸 방혜란(29)씨는 사고소식을 접한 뒤 영안실로 달려와 "비자가 끝나는 내년에 중국에 남겨 둔 동생들을 보러 간다고 그렇게 좋아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정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중상을 입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김대영(29)씨는 고교 검정고시 준비를 위해 고시원에서 지내다 변을 당했다. 사고 소식을 접하고 병원으로 달려온 김씨의 어머니 이정임(53)씨는 "배달과 식당 일 등을 하며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겠다며 고시원에 들어갔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라며 눈물을 쏟았다.
피해자 중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입국해 홀로 고시원에서 지내다 변을 당한 중국동포 여성들이 많아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씨를 비롯해 중국동포 여성인 박모(52)씨와 조모(50대 중반)씨가 목숨을 잃었고. 김모(45) 장모(41) 김모(31) 등 3명은 크게 다쳤다.
피해자 13명 중 6명이 중국 동포 여성들이었다. 고시원 인근은 식당 밀집 지역으로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많아 중국동포들이 '하꼬방' 같은 고시원으로 몰려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한 달에 18만∼25만원을 내고 약3.3㎡ 남짓한 방 한 칸을 임대해 살고있다. 사고 고시원에서 지내다 가까스로 변을 피한 중국동포 고모(42ㆍ여)씨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아 누가 사는지 모르지만 중국동포들이 15명 이상 살았다"고 말했다.
중국동포가 또 다시 대규모 참사의 희생자가 되자 중국동포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지난 1월 발생한 이천 화재 참사 때 중국동포 10여 명이 숨졌으며 지난해 2월 여수화재참사 때도 중국동포를 포함해 외국인노동자 10명이 사망했다.
정육식당에서 일하는 중국동포 장모(45ㆍ여)씨는 "돈 벌려고 왔다가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중국에도 이런 일은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을 돕고 있는 김해성 목사는 "오늘 발생한 사건처럼 '묻지마 식 폭력'으로부터 외국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며 "정부는 국내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 대해서도 우리 국민처럼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대책마련을 호소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윤재웅기자 juy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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