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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30> 고속도로 속도제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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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30> 고속도로 속도제한법

입력
2008.10.2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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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의원 시절, 하루는 건설교통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잠깐 만나자는 전화를 받았다. 무슨 급한 일 같기에 달려갔더니, 연방 고속도로 속도제한법 (National Highway Speed Limit )에 관한 건이었다. 당시 미국은 1974년 제1차 오일 쇼크를 계기로 55 마일(88km) 속도제한법이 의회에서 통과돼 미국 전역의 연방 고속도로에서 55 마일 이상으로 속도를 내는 것은 위법이었다. 55 마일 속도를 유지하면 하루에 휘발유를 수만 배럴 절약할 수 있고, 자동차 사고와 그로 인해 목숨을 잃는 비극을 많이 줄일 수 있다는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한 법이었다. 특히 미국은 중동의 석유에 소비의 36% 이상을 의존하고 있는 데 이를 크게 경감시킬 수 있으리란 점이 법 제정 이유였다.

그러나 55 마일 속도 기준은 비현실적이어서 특히 중서부 같이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의 넓은 고속도로에서 이 속도를 지키는 운전자는 단 한 명도 없다는 현지 조사결과 보고가 문제였다. 예를 들면 로스앤젤레스에서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사막 고속도로에서 55 마일을 강요하는 것은 너무나 웃기는 모순이었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을 범법자로 만드는 일종의 덫이라는 비난도 뒤따랐다.

결국 건설교통위원장의 얘기는 내가 55 마일 속도제한법을 폐기하는 법안에 앞장서 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토목공학을 전공했고 고속도로 설계에 전문성을 갖고 있어 나를 택했다고 말했다. 사실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할 사안이지 토목공학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지만 나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내 이름이 법안에 올랐다. 반대 의견은 생각보다 훨씬 격렬했다. 특히 속도를 낮춤으로써 자동차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가 줄었다는 통계에 관해 지역 주민들에게 어떤 설명을 해야할지가 한동안 나를 고민스럽게 했다. 민주당 의원들도 거의 일사불란하게 극구 반대하는 쪽에 가담했다.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의회에서 이를 무시하는 무책임한 행동을 하는데 대해 국민들은 반드시 분노할 것이라며 법안을 제안한 공화당 의원들을 비난했고, 그 때마다 내 이름도 함께 올랐다. 법안에 관련된 의견을 제시하는 편지와 전화가 하루에도 수백 통씩 쇄도했다. 다행히 나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편지가 과반수였지만, 반대 역시 만만치 않았다.

우리는 첫째, 현재의 속도제한법은 30여년 전인 1974년 아랍의 오일 엠바고(수출금지) 때 나온 긴급법안으로 애당초 사고를 줄이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고 주장했고 둘째, 전국 구석구석의 도로 사정을 잘 모르는 워싱턴의 의원들이'하나로 다 맞춰버리는 식' (One size fits all) 의 법안을 만든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반대여론을 잠재울 수 없었다. 생각하다 못해 55 마일 속도제한법을 미 전역에서 무효화하기 보다는 각 주 정부에 맡기는 안을 내면 반대파 의원들을 일부 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이를 절충안으로 상정했다. 그랬더니 이번엔 공화당 안에서 반대가 제기됐다. 속도제한, 즉 고속도로에서 얼마나 빨리 달려야 하느냐 하는 결정은 운전하는 사람 개인의 판단에 맡길 일이지 판단 주체를 연방 정부에서 주 정부로 옮기는 건 눈감고 아웅하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속도 제한이 없는 유럽의 예를 들며 미국 사람은 유럽 사람들보다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라는 공격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현지 도로 사정을 잘 아는 주 정부에 맡기는 것이 옳다는 절충안에 차차 힘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공화당의 극우파들은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정부보다는 일반 국민들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며, 때문에 시장경제도 결코 정부가 간섭하지 말고 자유 경제, 자유 경쟁에 맡기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정부가 할 일은 법을 어기는 기업들, 자유경쟁 원칙을 무시하고 큰 회사끼리 '합쳐 (M&A)' '독점 (Monopoly)'을 꾀하는 대기업들을 추려내 독점을 막는 일에 전심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워싱턴의 위정자들은 기업 활동을 돕는 법안에만 치중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은 대기업들이 문어발 식으로 영역을 확장, 돈벌이가 될만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작은 사업에까지도 손을 뻗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미국의 보잉 사는 오직 비행기 생산에만 몰두한다. 보잉 사가 자본이 없어서 보험회사나 건설회사, 빵집을 못하는 게 아니라 법이 이를 금지하기 때문이다. 오직 비행기 생산에만 몰두하기 때문에 전세계 항공기 제조 사업에서 수 십 년 간 1위 자리를 고수할 수 있었다. 그래야 중소기업들도 대기업의 침투를 걱정할 필요 없이 열심히 자기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55 마일 속도제한법을 폐지하는 법안은 우여곡절 끝에 건설교통위원회에 상정됐고 청?만?거쳐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거수로 표결에 부쳐졌다. 그 당시 민주당이 다수당이었기에, 주 정부에 맡기자는 절충안이 없었더라면 분명히 민주당이 일제히 반대해 빛을 보지 못하고 휴지통에 들어 갔을 것이다. 절충안은 보수 성향의 몇몇 민주당 의원들의 도움으로 건교 위원회를 통과했고 2주 뒤에 본회의로 넘어갔다. 본회의에서도 다시 격렬한 찬반토론 끝에 결국 55 마일 속도제한법은 탄생한 지 21년 만에 무효화 되었고 새로운 법안, 즉 속도 제한을 각 주 정부에 맡기자는 새로운 법안이 탄생했다.

그 후 각 주마다 이를 받아들여 가령 라스베이거스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는 75 마일로 속도제한을 올렸고, 다른 많은 도로도 70 마일로 제한속도를 높이게 됐다. 이 법이 통과됨에 따라 각 주는 수 십 만 개의 새로운 표지판을 만들고 또 이를 곳곳에 부착해야 했는데 의회는 이 때문에 수억 달러의 관련 예산을 책정하는 내용을 법안에 포함시켰다. 미 의회가 연방법을 통과시킬 때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재정적 부담 역시 연방 정부에서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법만 통과 시켜놓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을 지방 정부에 떠맡기는 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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