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기도 어려운 판에, 무슨…. 휴우~."
17일 오후 인천남동공업단지(이하 남동공단). 이곳에서 섬유와 기계공구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신원주식회사의 김세곤(52) 관리ㆍ자재 부장에게 "요즘 경기가 어떻냐?"라는 질문에 되돌아 온 답변은 한숨으로 가득하다.
"환율 때문에 원자재 수입 가격은 30~40%씩 뛰는데, 지불할 돈이 있어 야죠. 도저히 감당이 안됩니다. 중소기업이 돈을 금고에 쌓아 놓고 회사를 운영하는 게 아니잖아요? 요즘 은행 문턱이 얼마나 높은 줄이나 아세요? 중소 기업들 넘어지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벌겋게 상기된 김 부장의 얼굴 주변에선 시퍼런 핏줄이 곤두섰다.
미국발(發) 신용경색에 따른 금융위기 쓰나미가 실물경제로 빠르게 옮겨 붙고 있다.
특히 대외 환경변화에 취약한 중소 기업들의 피해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정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은행권에서는 여전히 자금을 대출해주면서 대출금의 일부를 강제로 예금하도록 하는 이른바 '꺾기' 행위가 성행하고 있는데다, 만기 대출 연장은 꺼리고 신규 대출 금리는 인상하면서 자금 줄이 막힌 중소 기업들의 경영난은 크게 악화되고 있다. 궁지에 몰린 중소 기업들은 '그 동안 어렵게 만든 국내ㆍ외 거래처들을 잃지는 않을까?'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 년 동안 운영해 온 공장을 내놓고 지방으로 이전하려는 중소 기업들도 부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남동공단내에서 공장 임대 및 매매 등을 전문으로 취급하고 있는 '탑' 공인중개사의 김인숙 대표는 "임대 목적이든 매매용이든 매물로 나온 공장들이 예년에 비해 여러 가지로 좋은 조건으로 쏟아지고는 있지만 성사되는 거래는 거의 없다"며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한 평(3.3㎡)당 550만원까지 했던 공장 매매 가격은 현재 500만원 이하까지 떨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입질이 없기는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이라도 하듯, 최근 중소 기업들의 은행 거래는 크게 위축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154개사를 대상으로 '최근 은행 이용시 겪는 애로사항'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26.4%가 '구속성 예금(꺾기) 가입 요구'를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으며 '대출금 일부 상환 후 만기 연장'(23.4%)과 '신규대출 거부'(21.4%), '추가 담보 요구'(20.1%) 등이 뒤를 따랐다.
장기화 양상을 띄고 있는 내수 침체 역시 중소 기업들에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남동공단에서 전자회로기판을 생산하고 있는 ㈜신협전자의 김병수(42) 이사는 "국내 시장 경기 불황으로 전년에 비해 공장 생산 출하 물량이 50% 가까이 줄었다"며 "운영 자금은 말라가는데, 높은 이자에 추가 대출은 어렵고, 인건비는 올라가면서 그야말로 죽을 맛"이라고 푸념했다.
이에 대해 관련 업계에서는 예기치 못한 금융시장 상황 변화에 따른 맞춤형 중소기업 비상 시스템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 경제분석팀 정남기 박사는 "국내 중소 기업들이 갖고 있는 위기 관리 능력을 감안할 때, 환율 급등과 같은 대외적으로 발생한 문제를 자생적으로 해결하기는 힘든 상태"라며 "안정적인 대ㆍ내외 환경 하에서 중소 기업들이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당 중소기업과 금융권, 관계 당국 등이 모여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중ㆍ장기 위기 관리 시스템'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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