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로 능력도 없고 좋은 직장에 다니지도 못하는 사람이 좋은 옷을 입고 큰 집에 살고 싶어서 높은 이자를 주기로 하고 친구에게서 돈을 빌렸다고 해 보자. 처음에 한 동안은 이자도 꼬박꼬박 갚고 원금도 조금씩 갚았지만, 자신의 분수에 넘치는 돈을 빌린 이 사람은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고 하자. 당연히 이 사람에게 돈을 빌려 준 그 친구는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며, 때로는 이 일로 친구 자신도 파산을 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상환능력 안 따지고 빌려준 돈
안타까운 일이지만 얼마 전 한 연예인의 자살에서도 보았듯이 이런 일은 인간 사회에서 항상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 돈을 빌려 주었다가 떼어 먹힌 친구를 동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상대방의 신용을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그렇게 많은 돈을 빌려 준 것은 무책임하다고 하는 의견들도 나올 것이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세계적 경제 위기의 본질은 이렇게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주었다가 이들이 갚지 못하게 되어 빌려 준 사람들도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앞의 예와 다른 것은 돈을 빌려 준 사람이 은행이라는 것이다.
개인이나 사채업자는 자신의 돈을 빌려 주게 되므로 혹시 돌려 받지 못하면 자신이 큰 피해를 보든지 파산하는 것으로 사태가 종결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금한 돈을 빌려 주는 은행이 빌려 준 돈을 떼어 먹히게 되면 그 은행에 예금을 하거나 거래를 하던 많은 개인들과 기업들이 같이 망하게 된다. 또한 이런 개인과 기업들은 다른 은행들과도 거래를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들이 파산하면 다른 은행들도 큰 피해를 입거나 심하면 파산하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일부 은행들이 집을 살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주었다가 이들이 갚지 못하게 되자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이런 영향이 결국은 선량한 다른 은행이나 다른 나라의 경제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 요즘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경제 위기 본질이다. 이렇게 금융 부문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사람들이 자신이 거래하던 은행이나 거래처가 갑자기 파산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되어서 소비와 거래를 줄이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실물 경제 또한 위축되어 경제 전반의 불경기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경제학 수업 시간에 책에서는 배웠지만,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우리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였던 '대공황'이라는 단어까지 신문에 등장하는 현실을 보며 경제학자인 나 스스로도 많이 놀라고 있다. 10여 년 전의 IMF사태에 이어서 이번 세계적인 경제위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와 함께 깊은 영향을 남기게 될 것이다.
우선 '미국발 경제위기'라는 말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미국에서 발생한 경제 문제가 전 세계에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키는지, 즉 전 세계의 경제들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것이다. 이제 자기 나라만 잘 해 보아야 소용이 없고 세계 모든 국가들이 서로 잘 해 나가야 된다는 인식을 사람들이 갖게 되어서 국제적인 공조가 보다 큰 지지를 받게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정부역할 확대 불가피하지만
또한 이번의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우선 가장 먼저 이야기 될 것이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시장, 즉 보이지 않는 손이 하는 대로 놓아두면 다 잘 돌아가서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주장에 대한 믿음은 많이 사라지게 될 것이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보이는 손'을 이용하여 경제를 규제하고 통제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사실 벌써 세계 각국의 정부들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정책을 내어 놓고 은행들을 일부 국유화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역할 확대는 현 시점에서는 불가피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쌀 직불금'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정부와 정치권의 보이지 않는 손은 과연 믿어도 되는지도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래저래 어려운 시기인 것 같다.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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