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간에 읽고 들은 말 중에서 이 말보다 더 가슴을 치는 건 없었다.
"그런 거 없어요."
학교 급식이 거의 유일한 하루 끼니인, 한 달 정부보조금 33만원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누나 네 식구가 살아가는 초등학교 4학년 남학생에게, 기자가 장래 희망은 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다. 한국일보가 경제위기를 맞아 기획한 시리즈에 바로 어제(20일), '밥 먹듯 굶는 아이 늘고 있다'는 제목을 달고 실린 기사 내용이다.
놀랍게도 이 학생처럼 급식 지원을 받는 아동의 수는 교육과학기술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4월 현재 61만7,000여명이 넘는다. 더 놀랍게도 이 통계에 따르면 결식 아동 수는 2004년(40만7,000여명)부터 따져도 해마다 4만~6만여명씩 늘어나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18세 미만 어린이ㆍ청소년 가운데 기본적인 의식주를 충족하지 못하는 절대빈곤 어린이와 청소년이 100만명에 달한다.
IMF사태가 겨우 10년 전인데, 아직도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데, 아마 그보다 결코 충격이 덜하지 않을 경제위기가 또 오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경제위기보다 더 심각한 것은 희망의 위기다. 희망 같은 거, 꿈 같은 거 없다고 말하는 결식 아동의 수가 늘어나는 만큼 한국 사회는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그 아이들에게 꿈을 되돌려주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이다.
하지만 그 아이들에게 희망의 싹이라도 줄 수 있는 복지를 주장하거나, 분배를 말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 마치 금기처럼 돼버렸다. 성장과 시장을 구두선처럼 외치는 이 정부에서는 여당 국회의원이나 차관이나 공무원들이 농민들 위한 쌀 직불금을 타 먹었다.
경제부처는 경제위기 대책이라며 은행에 1,000억달러의 빚보증을 서 주고, 몇 조원을 들여 건설업체들의 미분양 아파트는 물론 기업체의 비업무용 부동산까지 사 줄 것이라 한다. 그 은행들은 IMF사태 때 공적자금 받고, 지난해 서민들 펀드가 수익을 냈을 때 더 오를 것이라며 환매하지 말라고 강권했던 은행들이다. 지금의 여권(당시 야권)은 재작년 부동산 거품 논란이 한창 일었을 때 "거품은 무슨 거품이냐, 아파트 공급 부족 때문"이라고 강변했던 축이다.
대통령은 얼마 전 라디오 연설에서 "비가 올 때는 우산을 빼앗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은행이나 기업체는 비 올 때 정부가 우산이라도 받쳐 주려는 모양이지만, "희망 같은 거 없어요"라고 말하는 초등학교 4학년생의 하루하루는 우산 없이 비바람을 맞아야 하는 노숙이다. 희망도 꿈도 잃어버린 한국의 아이들과 청소년들, 소외계층은 애당초부터 쓸 우산조차 없었다. 시인 김사인의 '노숙'이란 시가 생각난다. 그가 시에서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쓴 '너'나 '몸'은 바로 나이고, 우리 사회의 우산 없는 사람들이다. 또다시 '진땀과 악몽의 길'이 오기 전에 그들을 위한 우산부터 마련해야 한다.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였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하종오 문화부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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