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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거대한 서사' 개인展 여는 설치작가 이불 "女전사 부담스러운 사십대, 자신 뒤돌아보려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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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거대한 서사' 개인展 여는 설치작가 이불 "女전사 부담스러운 사십대, 자신 뒤돌아보려했죠"

입력
2008.10.20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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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넘으니까…." '여전사'라는 별명으로 세계 미술계를 누벼온 설치 작가 이불(44)에게서 나이 이야기를 듣는 것은 낯설고 어색했다.

서울 청담동 PKM트리니티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이불은 "날아가는 화살처럼 살고 싶다 생각했는데 계속 질주하다 보니 어느 순간 속도가 느껴지지 않고 마치 정지한 듯 느껴졌다. 이제는 좀 깊어지고 싶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내가 서 있는 곳과 풍경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1989년 거꾸로 매달린 채 낙태를 표현하는 전라의 퍼포먼스를 펼쳤고 1997년 뉴욕현대미술관에 반짝이를 붙인 날생선을 설치해 생선 썩는 냄새까지 전시했던 이불은, 이후에도 사이보그와 몬스터 등 도발적이고 파격적인 소재의 작업을 해왔다.

1998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휴고 보스 미술상 최종 후보,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 수상 등 화려한 경력도 더불어 함께 쌓였다. 하지만 그는 "전사라는 별명은 몸매도 좋고 힘도 좋은 사람에게 물려줬으면 좋겠다. 전사, 투사, 치열함, 질주를 요구하는 시선이 나를 쫓아다니는 것 같아 불편하다"며 웃었다.

요즘 그는 '나의 거대한 서사'라는 주제로 고투를 벌이고 있다. 이불은 "마흔이 넘으면서 지금 이 시점에 대해,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문화적 정치적 배경에 대해 바라보고 싶었다"며 "나 자신을 뒤돌아보고 싶어 겁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욕심을 냈다"고 말했다.

그의 최근작을 모은 이번 전시에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대규모 설치작 '천지'는 지난해 프랑스 카르티에재단 미술관에서 한국 작가 최초의 초대전을 열 때 선보였던 작품. 낡고 깨진 대형 타일 욕조에 검은 잉크를 채웠다. 물고문을 연상시키는 이미지의 욕조 윗부분은 백두산의 형상이 둘러싸고 있다.

작가는 언뜻 난을 친 것처럼 보이는 자개 소재의 페인팅은 "풍경화"라고 소개했다.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의 풍경을 보고 움직임을 따라 선을 그린 후 구체적 형상은 지워낸 것이다. 촛불 집회 혹은 숭례문 화재가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화"라고 답했다.

벽면 설치작인 '인피니티' 시리즈는 양면 거울을 사용했다. 도시의 모습이 새겨진 조형물은 거울을 거쳐 반복되면서 마치 기계 같은 느낌으로 바뀐다. 반사를 통해 도시와 역사, 기계, 유토피아에 대한 시선을 표현했다는 설명이다. 전시장의 천장에는 한국 산업화의 상징인 고속도로를 소재로 한 설치물들이 걸려있다.

작가의 비판적인 시선이 뚜렷하게 읽힘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형상들은 아름답다. 이불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기획, 파시즘이든 혹은 나치즘이든, 그 아이디어에는 모두 아름다움이라는 요소가 들어있다. 하지만 현실을 거치며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20일까지. (02)515-9496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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