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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판사를 위한 변명 -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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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판사를 위한 변명 - 하나

입력
2008.10.20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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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대학생등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모니터위원들이 3월부터 6월까지 서울지방법원의 재판과정을 모니터한 결과, 재판정에 늦게 들어오거나, 당사자의 진술·증언을 가로막는 판사가 10명 가운데 1명이나 되었고, 심지어 재판 중 조는 판사도 있었다고 한다.

한 국회의원은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재판당사자의 진술이나 증언을 경청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판사들로서는 이러한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반성하고 더욱 몸가짐을 바르게 하여 재판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위 지적사항 중 판사가 재판 당사자의 진술을 가로막았다는 점과 관련해서는 달리 생각할 여지도 있음을 필자의 경험을 통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당사자 법정진술을 막는 이유

필자가 합의부의 배석판사로 있을 때에도 부장님께서 가끔 재판당사자의 진술을 중지시킨 후 그 당사자에게 진술하고 싶은 내용을 서면으로 정리하여 제출하라고 하는 경우가 있었다. 진술을 제지 당한 당사자의 낭패한 얼굴도 보기 안쓰러웠지만 당사자의 생생한 진술을 들어 보는 것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되었기에 필자도 당시에는 진술의 제지를 바람직하지 않게 여겼고, 재판장이 되면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까지 먹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생각은 그 후 단독판사가 되어 재판을 진행한 지 얼마 못 가 바뀌었고, 필자도 몇몇 사건에 대해서는 당사자의 진술을 중지시키고, 진술하고 싶은 내용을 서면으로 정리하여 제출하라고 하였다. 필자의 생각이 바뀐 이유는 먼저 일부 당사자들의 경우에는 진술을 무한정 허용하더라도 그것이 사건의 실체파악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건의 진실을 파악해야 올바른 판결을 할 수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일부 당사자들은 진술을 할 때,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못 되는 주변이야기만 장황하게 하다가 정작 필요한 부분은 빠뜨리기 일쑤였다. 또한 별다른 근거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그저 자신이 옳다는 주장만 일방적으로 되풀이 진술하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진술 중에 당사자들끼리 서로 고함을 지르고 말다툼을 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물론, 사건 당사자들은 법정에서 진술해 본 경험도 없고, 법률적인 전문 지식도 부족하므로 요령 있게 진술하지 못하는 그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진술을 방치해서는 사건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어 올바른 결론을 내릴 수 없으니 그 점이 큰 문제였다.

따라서 그 경우에는 두서 없는 진술을 그대로 계속하게 하는 것보다는 그 진술을 중지시키고,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정리한 후 주장하고 싶은 내용을 서면으로 조목조목 정리하고 각종 자료를 첨부해 내라고 한 다음, 제출된 서면을 검토하고, 첨부된 증거자료들을 서로 맞추어 봄으로써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 내는 것이 훨씬 능률적이었고, 결과적으로 당사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요령없는 진술은 오히려 장애

또 한 가지 이유를 부가하자면, 한 기일에 처리할 사건이 많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당사자들은 자신들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요령 있게 진술하지 못하고 중언부언하느라 시간을 한정 없이 끄는 바람에, 다른 사건의 심리에 막대한 지장을 주어 여타 많은 사건들이 졸속으로 심리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합리성 없는 진술 제지는 비난을 받아야 할 것이나,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모든 진술 제지를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물론 진술을 중지시킬 때 그 이유와 취지를 당사자에게 설명을 해 주어야 당사자도 납득을 할 것이다. 올바른 재판을 위한 실체적 진실의 발견은 판사의 우선적 책무이기도 하지만, 당사자의 협조가 없이는 달성할 수가 없다. 당사자들도 이 점을 잘 이해하고,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요령 있게, 그리고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술하려는 노력과 정성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변환철 중앙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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