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을 입에 올리는 일이 불온은 아니지만 그것을 '노래'하는 행위가 웬지 생급스러워진 이 시대. 백무산(53ㆍ사진) 시인의 존재를 우리 시대의 작은 희망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길 밖의 길> (2004) 이후 4년 만에 내놓은 그의 일곱번째 시집 <거대한 일상> (창비 발행)에서 시인은 뜨거웠던 80년대 이래 결코 사그라든 적 없었던 분노의 에너지로 노동-자본의 관계에 대한 진화된 현실인식을 실어 나른다. 거대한> 길>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자본의 무한질주와 폭력 앞에서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노동자, 농민들의 막막한 생존현실은 여전히 백무산의 주요한 관심사다. 한 여성 농민의 죽음과 그 죽음에 대한 일상인들의 무관심을 포착한 '호미'. 시인은 '밭고랑에 쓰러진 여자는/ 한 나절은 족히 있었으나 발견되지 않았다/ 평생 여자가 맨 고랑이 얼마인지 알 수 없으나/ 여자의 몸은 둔덕처럼 두루룩하니 굽어/ 고랑에 들면 눈에 잘 띄지 않았다'라며 죽음을 그려낸다. 평생 노동에 찌들렸을, 그러나 자신의 노동의 결실물로는 먹고 살 수 없었던 그녀의 비극적 최후는 지하로 지하로 휘둘리는 도시 빈민('저지대'), 먹은 것 없이 온종일 다이아몬드를 캐고 카펫을 짜는 제3세계 어린이들('백수의 왕')이 맞닥뜨린 비정한 현실의 미래형이다.
평론가 김수이가 지적했듯 이번 시집의 특징은 "시인이 노동자의 적은 자본가라는 도식적 인식의 틀을 깨고 그 적이 노동자 자신으로 확장될 수도 있음을 각성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과 자동화 물결 속에서 발생한 실업의 위협은 노동자로 하여금 더 연약하고 유연한 임금노예이기를 강요한다.
이 현실은 노동자들의 최후의 무기인 연대를 무력화하는데, 시인은 급기야 '아, 그렇게 만든 것은 우리들이다/ 더 이상 노동은 신성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노동이 자주 그렇게 만들었다/ 만들어가고 있다, 또 다른 치욕도'('치욕')라고 폭탄선언하기에 이른다.
절망적 상황 앞에서 시인은 "인간은 어디로 갔는가?"를 묻는다. '볕이 드는 곳 번듯한 곳은 그를 외면해도/ 그늘진 곳을 도맡아 말이 없고/ 있는 둥 없는 둥 궂은 일 묵묵 눈 맑은 사람들 있지/ 기죽지 마시게, 그대들이 내일의 사람이네/ 미래는 늘 오늘의 발바닥에 있다네'('누군가를 밟고 있었다면')라는 시인. 청년의 마음을 가진 채 늙어가는 그에게도 여전히 사람만이 희망이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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