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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Cine Mania] 금융위기 불똥 흔들리는 할리우드

입력
2008.10.2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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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2001년 개봉한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 저승과 이승 사이에 존재하는 상상의 공간 '림보'가 배경이다. 망자들은 림보에서 일주일간 머물며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 하나를 선택해야 저승으로 향할 수 있다.

림보의 직원들은 망자의 강렬했던 기억 한때를 짧은 영화로 남긴다. 섹스만을 입에 올리다 결국 부인과의 단란했던 온천여행 기억을 택하는 노인, 어머니가 만들어준 주먹밥을 먹으며 그네 타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노파의 사연들이 보는 이의 눈과 목과 콧등을 데운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장면들. 분명 림보는 이승의 물리적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후 세계인데도 림보 구성원들은 전기 공급 부족 등을 이유로 지상과 다름없이 곧잘 물자 절약을 외친다. 망자를 위한 영화 촬영에도 물적 제한이 만만치 않다.

최근 세계 증시 전광판을 퍼렇게 질리게 한 뉴욕 월가 발 금융위기의 불똥이 할리우드까지 튀었다고 한다. 영국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자금 동결이 은막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화제작 재무담당자들은 "경제가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값싼 오락인 영화를 더 즐긴다"며 할리우드의 건재를 강조하지만, 실상 앞날은 장밋빛보다 잿빛에 가까워 보인다.

벌써 희생양들이 줄을 잇고 있다. '007' 시리즈 23편과 '로보캅' 속편, '호빗'과 '트랜스포머' 속편 등의 제작과 개봉이 차질을 빚게 됐다. 흥행 마법사로 불리는 스티븐 스필버그도 예외는 아니다. JP모건체이스가 7억 달러 제공 계획을 보류하면서 그가 세운 드림웍스는 파라마운트로부터의 독립에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어디 좋은 영화가 돈으로만 만들어지는가. 자본의 공세에 맞선, 빛나는 성취들을 우리는 수없이 목도해 왔다. '원더풀 라이프'의 림보 직원들도 갖은 제약을 이겨내는 창의력으로 망자의 기억을 재생해낸다. '예술은 원래 배고픈 것'이라는 말처럼 지상이건 림보건 그 어느 곳이건, 창작은 풍족함보다 모자람을 자양분 삼는 것 아닐까.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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