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가격은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의 수급에 의해 결정된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 가격이 올라가고, 반대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 가격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런 경제학 이론이 적용되지 않는 이상한 시장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의 아파트 분양 시장이다.
국내 건설사들은 1980년대 이후 민간을 통해 주택 공급을 확대하려는 정부 정책에 힘입어 '땅 짚고 헤엄치기' 식 장사를 해왔다. 땅값과 건축비, 각종 사업비를 부풀려 터무니없이 비싼 분양가를 책정하는가 하면, 분양가를 먼저 정한 뒤 땅값과 건축비를 꿰어 맞추는 경우도 흔했다.
그래도 투기성 자본이 아파트에 계속 몰려들고 분양원가를 따지는 소비자도 없다 보니, 분양가 인상→ 주변 아파트값 상승→ 분양가 재인상을 통해 엄청난 폭리를 취할 수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건설회사 수가 4배나 늘어난 이유기도 하다. 그런데 경기 침체로 수요자들이 비싼 분양가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서 미분양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7월 말 현재 전국의 미분양 주택 수는 사상 최대인 16만여 가구. 업계에선 미신고분을 합칠 경우 25만 가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사의 경우 브랜드 가치나 신용등급 하락을 우려해 정확한 미분양 물량을 숨기고 있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수요가 줄 경우 분양가는 떨어져야 한다. 분양가 3억원짜리 아파트가 팔리지 않으면 2억5,000만원, 2억원 등으로 내리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부도 위기' 운운할 정도로 자금사정이 어렵다면서도 분양가를 대폭 낮춰 내놓는 건설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정부가 도와주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건설업계가 공멸할 것처럼 위기의식 조장에만 열심이다.
전문가들은 차제에 터무니없이 비싼 아파트 분양가를 떨어뜨리고 비대해진 건설업계를 구조조정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아파트에 낀 거품은 자연스럽게 꺼져야 한다. 요즘의 집값 하락은 과도한 거품이 꺼지면서 집값이 정상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시장의 수요는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아파트를 지어대다 위기에 처한 건설사들을 세금으로 지탱해주는 것은 거품만 더욱 키울 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미 수조 원의 혈세를 들여 미분양 물량을 떠안았고, 세 부담도 완화해줬다. 내주엔 건설사의 채권만기 연장 등 추가 대책도 내놓는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미분양이 넘쳐 나고 가계의 집살 여력이 바닥났는데도 주택공급 확대에 나서고 있는 점이다. 정부는 향후 10년간 연간 50만 가구씩 총 500만 가구를 추가 공급한다. 이를 위해 신도시와 뉴타운을 마구 늘리고 그린벨트와 준공업지역까지 풀어주기로 했다. 더욱이 내년에만 판교, 송파, 광교 등 2기 신도시 물량 57만여 가구가 쏟아져 나온다.
우리 인구구조를 보면 2010년께부터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한다. 국가가 노후를 책임져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은퇴자들은 주택 규모를 줄이거나 역모기지 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또 사회로 진입하는 '88만원 세대'는 집살 경제력이 안 되고, 2020년대 들면 인구 자체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공급이 수요를 크게 앞지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500만 가구가 더 공급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글로벌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은 미국 주택시장의 거품 붕괴 탓이다. 주택 수요가 영원할 것처럼 과도하게 공급을 확대해온 결과이기도 하다. 지금은 수급이 맞아떨어지도록 속도 조절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재학 경제부 차장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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