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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의 '공공의 적' 들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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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의 '공공의 적' 들고양이

입력
2008.10.17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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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이야옹~ 끼야옹!'

13일 밤 9시20분께 전남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 선착장 식당가. 골목 어귀에서 어둠을 할퀴는 울음소리를 내며 배회하던 들고양이 두 마리가 갑자기 한 횟집 앞 쓰레기통으로 달려들었다. 이어 쓰레기통을 헤집더니 생선대가리를 입에 물고 골목 안으로 잽싸게 사라졌다.

또 다른 횟집 입구. 손님들이 들락거리는데도 고양이 한 마리가 식당 앞에서 웅크린 채 꿈쩍도 않고 생선 뼈를 뜯고 있었다. 참다 못한 한 손님이 발을 구르며 내쫓자 그제서야 먹이를 챙겨 인근 하수구 구멍으로 몸을 숨겼다.

잠시 후, 불이 꺼진 식당가와 선착장은 야산에서 먹이를 찾아 내려온 들고양이들의 '사냥터'로 변했다. 눈에 띈 고양이만 무려 16 마리였다.

"요놈들이 사람을 전혀 겁내지 않아요. 심지어 겨울에는 추위를 피해 집 지붕과 천정 사이에 둥지를 튼다니까요. 올 겨울에도 찾아올 텐데 정말 징글징글합니다." 주민 최순심(67)씨는 벌써부터 원하지 않는 고양이와의 '동거'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한반도 남서쪽 끝 다도해의 최남단 섬인 거문도가 들고양이로 몸살을 앓고 있다. 40여년 전 농작물을 망치는 쥐를 잡기 위해 주민들이 하나 둘씩 들여온 고양이의 개체수가 늘고 야생에 적응하면서 생태계를 파괴하고 마을까지 내려와 행패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현재 거문도에 서식 중인 들고양이는 줄잡아 780여 마리. 하지만 이는 각 마을 이장들이 눈대중으로 헤아린 것이어서 정확성은 떨어진다. "1,000마리가 훨씬 넘을 것"이라는 말부터 "수천마리는 족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거문도 사람들 표현대로 들고양이는 "허벌나게 많다."

"생선과 건어물을 훔쳐 달아나는 건 기본이구요. 이젠 철장 안의 닭까지 잡아먹어요." 덕촌리에서 산란용 닭 1,000여 마리를 키우는 김길혁(53)씨. 그는 거문도에서 들고양이는 '공공의 적'이라고 했다. "고양이 울음소리와 잦은 습격에 닭들도 스트레스를 받아 계란을 낳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병아리들은 계사 밖에 내놓는 순간 고양이 '밥'이 됩니다."

마을에서 쫓겨난 고양이들이 산에서 1년에 2회, 한번에 3~6마리씩 새끼를 낳아 개체수가 급증하면서 거문도의 생태계도 무너졌다.

상위포식자가 없는 거문도에서 고양이들이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서면서 야생조류와 뱀 등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고 있다. 들고양이들이 야생조류는 물론 그 알까지 먹어치우면서 꿩과 흑비둘기는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서도 주민 이정완(81)씨는 "1885년 거문도를 점령한 영국군이 꿩을 섬에 처음 번식시켰는데 이 꿩은 뭍의 꿩과 달리 깃털 색깔도 곱고 크기도 작아 무척 예뻤다"며 "그런데 그렇게 많던 꿩이 지금은 완전히 씨가 말랐다"고 말했다.

"고양이 때문에 못 살겠다"는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않자 결국 다도해해상국립공원과 영산강유역환경청 등 관계기관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포획단이 14~15일 들고양이 소탕작전을 벌였다.

2003년에 이어 두 번째 '토벌'이다. 하지만 이번엔 들고양이 500여 마리를 잡아들인 5년 전만큼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주민들과의 쫓고 쫓기는 신경전 속에서 영악해질 대로 영악해진 고양이들이 50여 개의 생포트랩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생포작전 첫날 포획단이 생선 미끼를 집어넣은 생포트랩으로 잡아들인 고양이는 25마리에 불과했다.

포획한 고양이를 안락사시킨 뒤 소각처리하는 데 대한 동물보호단체의 반대와 예산 부족도 적극적인 구제사업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번 생포작전도 동물보호단체를 의식해 한 달 가량 늦춰졌고, 포획기간도 이틀에 그쳤다.

설상가상으로 주민들마저 들고양이 잡기를 꺼려하고 있다. 고양이는 자기를 해코지한 사람과 그 행위를 기억해뒀다가 보복한다고 알려져 있어 주민들이 선뜻 생포작업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며칠 전 삼산면사무소 직원이 마당에 있던 고양이를 돌을 던져 쫓았는데, 이튿날 사무실 앞 마당에 고양이가 토해 놓은 음식물이 발견된 터였다.

환경청 관계자는 "거문도는 흑비둘기, 박달목서 등 우리나라 고유의 야생동물들이 다수 서식하는 곳이어서 이들의 보호차원에서라도 들고양이 포획이 시급하다"며 "완전소탕은 어렵더라도 인위적인 개체수 조절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거문도=안경호 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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