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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미국의 후광이 사라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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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미국의 후광이 사라질 때

입력
2008.10.1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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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발 금융위기로 전세계가 휘청거리고 있다. 주가와 환율이 요동치면서 평범한 우리 이웃마저 불안감에 휩싸여있다. 도대체 이 사태는 왜 시작했고 언제쯤 끝날까. 그 피해가 누구에게까지 미칠까. 대공황으로 번지지는 않을까…쏟아지는 금융위기 뉴스를 접하다 보면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런 걱정은 그러나 우리의 어리석음을 되돌아보게 하는 좋은 반성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우선 미국에 대한 생각이다. 미국은 누가 뭐래도 세계 최강국이다. 경제력과 군사력, 정치적 영향력. 거기에 이질적 문화를 흡수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역동성과 창의력까지. 하지만 그런 미국이 이번 사태의 진원지다. 미국식 자본주의가 얼마나 엉성한지, 미국식 방임 시스템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났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 미국은 장점도 많고 단점도 많다.

하지만 우리사회에는 미국을 좋게만 보려는 태도가 있다. 그런 생각은 정치인, 교수, 언론, 관료 등 미국에서 생활해본 사람에게서 특히 자주 발견된다. 남북관계를 물으면 한미공조라는 말밖에 할 줄 모르면서 미국을 비판하면 큰일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여론 형성과 정책 집행에는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미국식 가치를 이식하려 한다. 이번 사태는 미국도 잘못할 수 있고, 미국 것도 가려서 수용해야 한다는 교훈을 들려준다.

경제가 한 나라만의 영역에 갇혀있지 않다는, 당연한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 세계는 이미 자본, 상품, 노동의 국경이 없어진 지 오래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외국산 소비재를 사용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를 만나면서 우리는 그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처럼 경제규모가 크고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면 세계경제의 흐름과 무관하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그러나 그런 상식을 잊거나 외면할 때가 많았다. 지난해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불거지고 세계경제가 어려울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을 때도, 우리만은 고도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7% 성장을 약속한 이명박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이명박 정부는 그런 기대에 맞춰 성장정책에 집착했다가 물가를 올리고 외화를 낭비한 채 어정쩡한 상태에 몰려 있다. 이번 사태는 우리가 세계경제의 흐름을 읽지 못한 채 얼마나 허황된 기대 속에 살았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돈을 쉽게 벌도록 하면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도 이번 사태의 교훈이다. 월가가 파생상품을 만들 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번 사태에서 보듯 거기에는 거품이 많았다. 거품은 가라앉혀야 하는데 도리어 바람을 불어넣는 바람에 터지고 만 것이다. 금융계는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월가가 거품을 빼지 않은 데는, 지금 이대로 가자는, 쉽게 돈을 벌자는 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워렌 버핏이 파생상품을 '금융계의 대량 살상 무기'에 비유했을까. 그런 면에서 보자면 한국의 탐욕도 대단하다. 투기꾼은 말할 것도 없고 공직자든, 기업인이든, 교수든 돈만 있으면 땅을 사댄다. 쉽게 벌 수 있다면 도덕성도, 사회정의도 문제 삼지 않는다. 편하게 벌겠다는 욕심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규제 장치가 필요한데 우리 정부는 그것마저 벗겨내려 하고 있다. 미국 정부에 쏟아진 비판 중 하나가 월가의 규제 장치를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광희ㆍ국제부 차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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