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금산분리 완화법안이 13일 발표됨에 따라 찬반논란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현재 글로벌 신용위기로 인해 '돈맥경화'에 빠진 은행이 자본을 확충하고, 정부 소유의 은행을 원활하게 민영화하기 위해서는 규제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장기적으로 국제경쟁력을 갖춘 대형 국내 금융회사를 두기 위해 국내 산업자본을 금융산업으로 끌어 들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지금 금융업과 제조업의 차단막을 걷어낸다면 세계 금융위기가 국내 실물경제로 더욱 빠르게 확산될 거라는 우려 등 다양한 반대여론이 제기되고 있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해 보인다.
금융위기 속에 규제완화 합당한가
많은 전문가들은 세계 금융위기 상황에서 규제를 섣불리 완화했다가 국내 제조업까지 타격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크게 우려한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는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전 세계적인 차원의 금융산업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제도변화는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면서 "산업자본이 10%까지 지분을 보유, 은행을 사실상 지배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최운화 LA커먼웰스비즈니스은행장은 "최근 한국정부가 대대적인 금융규제 완화를 추진하는데 이는 다소 시대착오적"이라며 "현재 금융위기의 정도가 대공황에 필적할 정도로 상당한 만큼 당분간 금융시장의 자본건전성과 감독의 심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금산분리 완화가 현재의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주현 금융위 정책국장은 이날 "이번 방안들은 금융위기를 촉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위기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라며 "금융위기로 인한 우려가 있는 건 알지만, 앞날을 위한 제도개선을 미룰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은행이 대기업의 사금고화되나
일반 개인들의 예금을 담보해야 하는 은행이 대기업의 사금고로 전락할 지 여부도 쟁점이다. 정치권에서도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김유정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을 통해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는 재벌기업이 은행산업까지 독점한다면 온 국민의 재산을 재벌기업이 좌우하게 되는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승흡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금산분리 완화를 두고 "고양이(재벌)에게 생선가게(은행)를 통째로 내준 꼴"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조윤선 한나라당 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기본적으로 금산분리 조치에는 찬성한다"면서도 "아직 당론으로 확정하지 않아 앞으로 당내 논의과정에서 재검토할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김용기 연구전문위원은 "은행과 주주인 대기업 간의 대출이나 채권인수는 법적으로 한도가 정해져 있어 은행이 사금고로 전락할 가능성은 없다"며 "불법행위 가능성을 가지고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주회사 규제완화, 삼성을 위한 것인가
비은행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완화 방안과 관련해 '삼성그룹'을 위한 것이냐를 둘러싼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형태로 이뤄져 있다. 현행제도에서 삼성생명이 상장되면 에버랜드가 자동적으로 금융지주사가 되고, 금융지주회사는 제조업 자회사의 지분을 5% 이상 보유할 수 없다는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삼성전자 지분 일부를 팔아야 한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을 통해 삼성의 고민이 해결될 수도 있다는 점이 논란의 배경이다. 금융당국은 "이번 개정안을 보면 보험지주회사는 제조업 자회사를 가질 수 있는 대신 자회사인 보험사(삼성생명)가 그 밑에 제조업체(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없게 해 삼성 역시 직접적 혜택을 입을 수 없다"며 이 같은 논란에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교수는 "삼성생명이 지배목적이 아닌 포트폴리오 목적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하는 것은 가능하다"며 "이후 법안 시행령이 구체화되는 것을 끝까지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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