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문제로 지역 사회가 이렇게까지 시끄러워질 줄은 몰랐어유."
고즈넉한 산골이 새로 부임한 중학교 교장 퇴진 문제로 발칵 뒤집혔다. 전교생이 20명도 채 되지 않는 충북 괴산군 A중학교가 술렁대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초 성희롱 전력이 있는 B교장이 부임하면서부터.
B교장은 지난해 충주 모 중학교 교장 재직 당시 여교사를 성희롱 한 혐의로 정직 1개월의 중징계를 받은 데 이어 시민단체 등이 연대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에서 700만원 배상 판결을 받았다.
도교육청 직속기관으로 전보됐던 B교장은 올해 8ㆍ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뒤 9월 1일자로 이 학교 교장에 임명됐다.
학부모들은 "성추행 전력이 있는 교장에게 아이들을 맡길 수 없다"고 발끈했다. 이들은 교장 교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9일부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있다.
10, 13일에는 3학년 학생 1명만 나와 수업을 받았고, 나머지 18명은 등교를 거부한 채 인근에서 학부모 주도로 현장학습을 했다.
한 학부모는 "등교 거부의 최대 피해자가 우리 자식인데 오죽하면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쓰겠냐"며 "교육자로서 자질이 없는 사람을 발령 낸 교육감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면내 이장단과 사회단체 등이 교장 퇴진 요구에 가세하면서 파문은 고장 전체로 퍼졌다. 학교 입구와 거리 곳곳에 B교장 퇴진을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괴산이 쓰레기장이냐, 우리 고장이 그렇게 만만하냐' '성추행 교장은 청정지역에서 즉각 떠나라'는 등 다소 과격한 문구에는, 공교육이 무너졌다고 개탄하는 요즘에도 여전히 학교를 '신성한 곳'으로 여기는 순박한 산골마을 주민들의 성난 민심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12일 오후 경운기를 타고 밭일을 나가던 60대 부부는 A중학교 얘기를 꺼내자 손사래를 쳤다. "교장이면 덕망 있고 존경도 받아야지. 나쁜 짓 한 사람이 하면 되나.
조금 있으면 우리 손주들도 중학교에 갈 텐데, 당장 물러나야지." 면사무소 입구에서 만난 주민은 교육 당국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했다. "도시의 큰 학교 같으면 문제 있는 교장을 뚝딱 발령 냈겠습니까? 교육청이 시골 학교라고 우습게 보고 일을 저질러 조용하던 동네가 엉망이 됐지요."
이장단 대표를 맡고 있는 김모(60)씨는 "시골 학교는 단순히 학생들이 공부하는 공간을 넘어 주민들의 쉼터이자 문화마당, 나아가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라 주민들이 학교 일에 더욱 애절해 하고 자기 일처럼 관심을 쏟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B교장은 주민들의 퇴진 요구를 일축하고 있다. 그는 최근 성명을 내고 "당사자에게 해명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갑자기 학교를 떠나라고 압력을 넣는 만행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학부모가 의무 교육중인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은 법으로 보장된 교육권에 대한 침범이자 교육정상화를 해치는 테러"라고 비난했다.
배후설도 제기했다. 등교 거부를 선동하는 '외부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성희롱 전력에 대해서도 "8ㆍ15 특사로 완전 소멸된 사안인 만큼 재론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관련 민사소송 건도 항소 중이므로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양측의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자 교사들도 좌불안석이다. 한 교사는 "원칙대로 처리한다는 학교 방침을 어길 수도 없고 학생들 편을 들 수도 없어 미칠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교사들은 주말인 11, 12일 각 가정을 방문해 학생들이 등교하도록 설득했지만 13일 학생들이 나타나지 않자 허탈해 하고 있다.
이날 학부모와 학생들은 충북도교육청을 방문, 교장 교체를 요구하며 농성을 했다. 학부모들은 17일 도교육청에 대한 국정감사 때 항의 방문할 계획이며, 그래도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자녀들을 충주 등지로 전학 시키겠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충북도교육청은 수습 방안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있다. 인사담당 장학사는 "교육감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하는 사태까지 빚어졌지만 특별사면을 받아 결격사유가 없는 B교장에 대해 인사상 불이익을 주지 못하는데다 전보제한(1년)에 걸려 후속 조치도 어렵다"며 "학부모들도 한치 양보를 하지 않고 있는 만큼 뾰족한 대책이 없다"고 실토했다.
괴산=한덕동 기자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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