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엊그제 대기업이 은행이 지배할 수 있는 길을 터주고 금융지주회사가 제조업체를 자회사로 둘 수 있게 하는 내용의 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예상됐던 대로 찬반양론이 거세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자본의 탐욕을 다스리지 못한 결과로 이해되는 시점에서 정부가 당정협의조차 제대로 거치지 않는 설익은 안을 불쑥 내놓아 논란과 비판을 자초한 셈이다
이번 개정안은 우선 현재 4%로 제한돼 있는 국내외 산업자본의 시중은행 보유한도를 10%로 올렸다. 또 대기업이나 그 집단의 계열사가 출자한 사모펀드를 산업자본으로 분류하던 출자지분율 기준을 대폭 완화해 국민연금 등 공적 연ㆍ기금이나 사모펀드들도 일정 요건을 갖추면 은행을 인수할 수 있도록 했다.
지분이 다양하게 분산된 한국 금융업의 현실을 감안하면 대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합법적으로 은행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아울러 금융지주회사가 제조업도 자회사로 둘 수 있게 허용했다. 복잡한 순환출자구조로 이뤄진 삼성 등 국내 주요 재벌이 지주회사 체제로 지배구조를 전환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당장 시민단체와 학계는 정부의 개정안이 은행의 재벌 사금고화를 촉진하고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은행 대주주의 자격심사 강화, 자금흐름 검사, 은행의 경영건전성 감시 강화 등 엄정한 감독과 적절한 규제를 병행해 예상되는 부작용을 원천 차단하겠다지만 그런 약속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돌연한 정부의 입법예고안보다 반대론이 제기하는 우려가 훨씬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금융산업 간 혹은 금융과 산업 간의 방화벽 부실이 대공황에 버금가는 금융위기를 초래한 최근 사례만 봐도 기업의 선의에 금융을 맡기는 것은 극구 경계할 일이다.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식의 낡은 금산분리론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은행 산업은행 등의 민영화 일정과 자본여력을 확충해야 하는 은행의 현실을 감당하려면 국내 산업자본의 은행업 진출은 불가피한 측면이 많다. 이런 맥락을 무시한 정부안은 미덥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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