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4월 광주에 사는 정모(58)씨는 일반 보장성 보험에 가입하기로 했다. 건강검진이 필요하다고 설명한 보험설계사는 며칠 후 간호사 한 명을 데리고 정씨 집을 찾았다. 혈압 측정 및 채혈 등 간단한 테스트만 마치면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채혈 후가 문제였다. 채혈한 뒤부터 왼팔이 붓더니 며칠이 지나자 통증으로 사용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이후 정씨는 두 달이 넘게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보험회사에 항의했지만 "우리는 건강검진을 용역 업체에 맡겼을 뿐 책임질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보험에 가입할 때 실시되는 건강검진이 이처럼 엉터리인 것으로 드러났다. 의사의 지도 감독 없이 간호사들이 검진하고 소견서까지도 작성하는가 하면, 검진차량의 운전사가 엑스레이를 찍는 등 무면허 의료행위가 공공연히 이뤄져 왔다. 의사들은 돈을 받고 명의를 빌려줘 이들의 무면허 의료행위를 방조해왔다.
서울 구로경찰서는 16일 보험 가입 희망자들의 건강검진을 대행해주는 출장검진의료기관(파라메딕)에게 병원 명의나 의사 면허를 빌려주고 이득을 챙긴 혐의(의료법 위반 등)로 대학병원 원장 이모(65)씨와 김모(50)씨 등 의사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또 이들로부터 의사 면허증을 빌려 파라메딕 업체를 차리고 간호사에게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한 이모(48)씨 등 4명의 운영자와 무면허 진료를 한 간호사 400여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대학병원 등은 명의를 빌려주고 파라메딕 업체가 보험사에서 받은 검진비(1건 당 3만5,000원~4만원 수준)의 20% 가량을 수수료로 챙겼다.
업체 운영자들은 보험사에서 받은 검진의뢰를 인터넷을 통해 해당지역 간호사에게 진료명령을 내리고, 소견서를 작성토록 한 뒤 의사가 날인한 것처럼 꾸며 보험사에 보낸 것으로 조사됐다. 의사의 지도 없이 이뤄지는 검진이다보니 정씨 같은 의료사고 피해자가 발생할 우려가 높다고 경찰은 밝혔다.
적발된 파라메딕 업체 4개사가 2005년 1월부터 올해 9월까지 무면허 의료행위로 검진한 보험 가입 희망자는 70여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이들이 보험사에서 받아낸 검진비만도 약 280억원에 이른다.
경찰 관계자는 "다른 파라메딕 업체에 대해 수사를 확대하는 한편 검진을 위탁한 보험사들도 의사 없는 의료행위를 묵인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27개 보험사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