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권위지 가디언(The Guardian)을 세계 최고 신문으로 꼽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더 타임스와 파이낸셜 타임스, 미국의 뉴욕 타임스 등 저마다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신문은 많다. 그러나 이들 신문 인터넷 판에 자주 의지하는 경험에 비춰보면 역시 가디언이 최고다. 기사와 논평 수준뿐 아니라 검색서비스도 단연 앞선다. '올해의 인터넷 신문'으로 거듭 선정된 이유일 것이다.
가디언 인터넷 판(guardian.co.uk)의 독자 댓글은 그 것대로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여론을 가늠하는 데 유용하다. 어제 아침, 정부가 위기에 처한 은행에 막대한 구제자금을 지원한다는 톱기사에는 이런 댓글 수십 개가 붙었다.
'악플 천국'에 언론 책임 커
"대처와 레이건이 세계경제와 자본주의를 망치고 숱한 사람을 절망에 빠뜨렸다-ektope". "나라는 안중에 없는 정신병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왜 국민 세금을 쓰는가-TelemaBoy". "우리 같은 개인이 잘못 투자해도 정부가 구제해 줄 것인가-mooty".
유례없는 위기 상황인지라 여느 때에 비해 표현이 거칠다. 평소에는 기사보다 돋보이는 댓글이 적지않게 오른다. 이를테면 정연한 국제법 이론으로 사설과 논평을 반박한 글이다. 해외 이슈에 현지 독자가 실상을 밝힌 글도 자주 오른다.
세계 최고 수준의 신문이니 당연한 일로 여길 게 아니다. 이 신문은 익명 댓글을 허용하지만, 먼저 실명 등록을 해야 한다. 아이디를 클릭하면 실명과 사는 곳 등 프로필이 뜬다. 또 댓글마다 '악플 신고'(Abuse report)를 할 수 있게 돼 있다. 독자의 권리를 오ㆍ남용하는 '악플'의 기준은 엄격하다. 인신공격, 욕설, 위협, 주제 이탈, 법률문제, 낚시 등이다. 실제 이 기준에 크게 벗어난 악성 댓글은 보지 못했다. 사전ㆍ사후 검열이 철저하다.
가디언 뿐 아니라 제법 이름있는 신문은 모두 '악플'을 엄격하게 규제한다. 더 타임스는 관리자가 지정한 기사와 논평에만 댓글을 달 수 있고, 욕설ㆍ 위협ㆍ 불법적 내용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모든 댓글을 규제한다. 뉴욕 타임스도 악성 댓글을 사전 검열하고, 매일 몇몇 사설과 칼럼에만 허용하는 댓글이 많다 싶으면 "그만 받는다"고 막는다.
독일 권위지들은 더욱 엄격하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는 실명 댓글만 올릴 수 있고, 주제와 사실관계에 충실해야 한다. 근거 없는 주장과 명예훼손, 기업이익 침해 등은 모두 걸러낸다. 이런 댓글 지침을 반복해서 어기면 독자 등록을 삭제한다. 쥐드도이체 차이퉁은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댓글을 올릴 수 없다. 이 '댓글 동결'은 주말에는 월요일 아침까지 연장된다. "독자 토론의 질을 통제, 정화하기 위해서"다.
외국 신문 사례를 장황하게 소개한 것은 우리 언론, 신문들이 '악플 대책' 논란에 열 올리는 것이 낯간지러워서다. 인터넷 공간이 '악플 천지'가 된 데는 포털 사이트의 잘못이 크다지만, '사회 공기(公器)'를 자임하는 신문의 책임이 무겁다. 이념과 성향과 형편 등에 관계없이 상업적ㆍ 정치적 이해에 급급, 온갖 악성 댓글을 거의 무제한 허용한 원초적 잘못부터 반성해야 한다. 약간의 뒤늦은 자기 규제를 앞세워 "이대로는 안 된다"고 떠드는 것은 상투적 위선일 뿐이다.
사이버 모욕죄보다 자체 정화 힘써야
사이버 모욕죄 신설 논란에 매달릴 게 아니다. 언론을 비롯한 인터넷 사이트의 자기 규제, 자체 정화를 먼저 논해야 한다. 사이버 모욕죄를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면, 수사기관의 자의적ㆍ선별적 적용을 피할 수 없다. 그게 아니라도 악성 댓글이 실제 범죄에 이르는 길을 차단하는데 힘을 쏟는 것이 사회적으로 올바른 선택이다. 악플의 터전을 제공하는 행위부터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이런 사리와 법 원칙을 외면한 채 '악플러' 제재를 외친다면, 지겹도록 경험한 '댓글 수준 논란'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강병태 수석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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