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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대화-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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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대화-스럽게

입력
2008.10.1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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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잘 가르쳐보자며 어떤 교장 선생님은 조회 1시간 동안 자기 경험만 줄창 이야기한다. 스스로는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산더미같이 많아서 그럴 테지만 참 일방적이다. 어떤 식의 학습과 교류가 일어나기는커녕 그 자리가 끝나기만 고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분은 아실까. 좋은 교육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 과정이 교육스럽지 않을 때는 효과가 별로 없을 테니 아쉽다.

그저 바쁘게만 사는 삶은 몸도 마음도 위험에 빠뜨리고 만다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있다고 하자. 소위 명상이나 수행법을 다룬 책들, 슬로 푸드를 비롯하여 참살이를 개척해가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과 정보들을 수도 없이 섭렵하고 다닌다고 하자. 느리게 살기 위해 바쁘게 사는 그런 아이러니를 이해 못할 것은 없으나 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대화를 통한 소통'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이 많아졌다. 사실 두 대화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대화는 필요 없다. 서로 "나는 이렇게 생각해요", "맞아요, 나도 그래요"라는 식이라면 그것은 복창이다. 소통이란 서로의 차이를 알게 되는 것에서 온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던 상태에서 조금은 저간의 사정을 알게 되면서(혹은 알게 해주면서) 속이 좀 뚫리는 것이다. 동어반복적 이야기는 소통을 가져다 줄 수 없다. 애당초 답답함과 갈등이 없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자면서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은 대화의 정신을 아시는지 모르겠다. 가족들 간의 대화가 매우 소중하다면서 그 의미에 대해 1시간 동안 혼자서만 말씀하시는 어른이 있다면 그 사이에 가족들은 대화 연습을 한 것이 아니라 훈화만 들은 셈이다. 너끈히 대여섯 시간은 지난 것처럼 느껴지는 심리적 시간 동안 이들이 표정을 감춘 채 머리 속에서나마 딴전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그 어르신은 아실까. 대화가 대화스럽지 않은 사례다.

모두들 대화와 소통을 부르짖는 우리 사회에서 마치 요식적 행사처럼 치러지는 청문회며 담화들이 대화의 이름으로 대화의 정신을 갉아먹는다. 대화가 아닌 유사 대화적 풍경이 난무한다. 대화를 통해 자신의 주장의 근거가 허술했음을 인정하고 의견을 바꾸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 대화를 통해 상대방으로부터 한 수 배웠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 사람. 그 사람의 생각에 끝까지 동의할 수는 없지만 마음만은 서로 상하지 않게 내공을 쌓아가는 사람. 이들이 대화를 대화-스럽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대화자가 느끼는 상대방 주장의 진정성은 그 내용이 자신의 삶에서 배어나올 때다. 우리가 의식적 차원에서 맞다, 틀리다라고 받아들이는 기준보다 더 어려운 시험대가 체화(體化)의 관문을 넘는가 아닌가에 있다. 체화되지 않은 주장은 자기 스스로 믿지 않으면서 그저 말로 뇌까리는 것에 불과하다.

오랜 연습과 수행 끝에 만들어지는 좋은 대화는 참여자와 함께 하는 공연작품이다. 두 화자는 일방통행로가 아닌 교차로에 서 있다. 대화가 끝나고 둘은 같이 갈 수도 있고, 서로 다른 길로 갈 수도 있고, 새 길을 찾아 함께 떠날 수도 있다. 단지 대화 이전의 상태와 각자 조금이나마 달라진 채 또 다른 대화 상대방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게 되었다면 대 성공이다.

대화가 대화-스러울 때. 바로 그 때 타인과의 대화는 토론의 질을 심화시킨다. 이방인과의 대화는 단절의 벽을 무너뜨린다. 자신과의 대화는 성찰의 강물따라 흘러간다.

윤혜린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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