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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노벨문학상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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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노벨문학상으로 가는 길

입력
2008.10.13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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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도 노벨문학상은 몇 년째 거론되고 있는 한국 작가에게는 돌아오지 않았다. 올림픽과 월드컵을 주최하고 세계 13위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국력이 모자라 자기나라 문학을 세계에 제대로 알리지 못한 탓인가? 아니면 스웨덴 한림원의 유럽 중심적인 편견 때문에 한국의 우수한 문학을 애써 외면하기 때문인가?

일본문학은 벌써 두 번이나 수상했고 중국 작가도 한 번 탔는데 한국문학은 언제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중국과 일본이라는 동아시아 문명의 두 축 어느 쪽 아류로 치부되고 싶지 않은 한국인의 문화적 자존심은 노벨문학상의 한을 키우고 있다.

한국적인 게 곧 세계적인 걸까

그 동안 정부와 문학계는 물론 이미 오래 전부터 민간 재단들이 나서서 노벨문학상을 겨냥하여 세계에 한국문학 알리기를 힘써오지 않은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일본작가 오다 마코토(小田實)가 주도하는 '김지하를 돕는 모임'에서 김지하를, 80년대 초에는 한국문인협회가 <무녀도> 의 작가 김동리를 스웨덴 한림원에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한 바 있다.

그 후 문예진흥원과 대산재단이 많은 예산을 들여 조세희, 한무숙, 이청준, 고은, 황석영, 이문열, 이승우 등 여러 작가의 작품을 영어, 불어, 스웨덴어로 번역하여 현지출판까지 시도하면서 해마다 그 작가들을 스웨덴 한림원에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우리가 얻은 것은 몇몇 작가들이 프랑스 등지에서 문학평론가들 사이에 약간의 주목은 끌었다는 정도일 뿐이다. 한국문학의 노벨문학상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요원한가? 1980년대 초 스웨덴 주재 공보관으로 한국현대문학 포럼을 열어보았고 2007~2008학년도에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파견교수로 스톡홀름대학에 가서 한국학을 강의하면서 나름대로 한국문학의 노벨문학상 접근방식을 생각해 보았다.

첫째,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가 '일본정신의 정수를 표현한 문학적 감각성'으로 수상했다고 하여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생각이 한국문학에서도 통할까? 19세기 말 이래 축적되어온 해외일본학과 이제 겨우 20년쯤 된 해외한국학의 역사를 생각하면 스웨덴 한림원의 한국문명에 관한 문학적 관심을 기대하기는 아직 무리다.

지금까지 스웨덴 한림원은 일찍이 1913년 라빈드라나드 타고르와 1938년 펄 벅으로 인도와 중국문명을 조명한 바 있고, 그 후 뒤늦게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 1988년 나기브 마푸즈, 2006년 오르한 파묵으로 일본, 카이로의 아랍, 이스탄불의 터키 문명에 관심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1994년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와 2000년 가오싱젠(高行健)은 이미 '일본적'이거나 '중국적'인 향토성을 넘어 보편적인 인간의 문학으로 평가 받았다.

둘째, 번역의 문제다. 전문 번역사에 의한 문학작품 번역은 결코 세계 독서계를 감동시킬 수 없다. 적어도 한국문학 작품의 번역은 번역어를 모국어로 가진 문학자가 한국문학작품의 한국어 원문을 터득하여 직접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발휘해야 한다. 번역문학은 또 하나의 창작이다. 일천한 해외한국학의 역사를 생각하면 그런 번역 문학자를 얻으려면 아직도 한 세대를 더 기다려야 한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해온 식으로 전문 번역사를 동원한 성급한 번역출판 작업은 오히려 한국문학에 대한 세계 독서계의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언어ㆍ번역에 대한 인식 바꿔야

셋째,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가로막는 것이 반드시 한국어라는 비유럽 소수언어라는 한계 때문만일까? 조선시대 전통사회의 이야기를 극화한 TV드라마 <대장금> 이 중국과 일본처럼 동아시아와 전혀 다른 문명권인 동남아와 중동지역에서까지 한류 붐을 일으키며 독자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TV드라마라는 현대식 예술형식으로 가능한 테마가 문학이라는 장르에서는 왜 안 된다는 것일까?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 가 그것을 원작으로 했다는 TV드라마 <이순신> 보다는 훨씬 감동적일 수 있었는데…. ·

김준길 명지대 국제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

전 스톡홀름대 한국학 객원교수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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