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 정부는 북한과 핵 검증 및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에 합의함으로써 임기 내 북한 비핵화 2단계 완료라는 가시적인 성과 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부시 정부는 20여일밖에 남지 않은 대선 이후에는 북한 핵 정책에 대한 방향키를 사실상 차기 정부로 넘겨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부시 대통령이 외교업적으로 공을 들여온 북한 비핵화 로드맵 마련은 물건너갈 수밖에 없다.
이런 내부적 상황은 부시 정부가 20년9개월동안 북한에 씌웠던 테러지원국의 모자를 벗겨주고 북한 핵 불능화의 불씨를 살리는 선택을 하도록 하는 데 결정적 요인이 됐다.
하지만 이 선택을 위해 북한 핵 검증에 대한 강경한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야 했다. 당초 10일 예정됐던 해제 발표 시점이 하루 연기된 것도‘검증 원칙 후퇴’에 대한 대북 강경파들의 반발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1일 테러지원국 해제가 발표되는 자리에서 폴라 드서터 국무부 검증ㆍ준수ㆍ이행 담당 차관보가 북한의 미신고 시설에 대한 검증 없이 테러지원국에서 북한을 해제한 것이 “북한의 명백한 승리”라는 존 볼튼 전 유엔대사의 비판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적절한 것”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것은 이런 기류를 반영하고 있다.
합의안 도출의 주역이었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해제 발표 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등 강경파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강경파 설득을 위해 테러지원국 해제는 ‘잠정적’인 것이며 추후 검증이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부시 정부가 북한을 다시 테러지원국 명단에 환원시키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북한도 미국과의 합의를 통해 핵도박의 판을 마냥 키울 수 없는 현실적 문제를 해소했다. 영변 핵시설 재가동으로 압력 수위를 높여왔지만 더 진행할 경우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 받게 될 채찍은 물론 합의시의 당근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문에 북한은 일단 부시 정부 임기 내에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확실한 선물을 챙겨두고 다음을 예비하는 현실론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합의로 파국으로 치닫던 북한 비핵화 2단계도 다시 본궤도에 오를 수 있는 동력을 확보했다. 향후 북한은 미국과 합의한 핵 검증 이행계획서를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에 제출하고, 중국은 이를 공개 발표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달 중 6자회담을 개최해 당사국들이 합의를 추인하고 비핵화 2단계를 매듭하기 위한 본격적인 절차를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되면 영변 핵 시설에 대한 검증은 북 핵 폐기를 규정한 비핵화 3단계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