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을 위해 100년을 기다렸다는 중국이 올해 하계올림픽과 장애인올림픽이 끝나기 무섭게 또 하나의 '올림픽'을 개최했다. '두뇌 올림픽'이라 할 제1회 세계마인드스포츠게임(The 1st World Mind Sports Games)이 3~18일 베이징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로서 베이징은 8월부터 석 달 동안에 세 번의 '올림픽'을 치르는 '올림픽 중심도시'로 급부상하게 됐다. 그 의욕과 저력이 '부러움 반, 두려움 반'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중국 사람들이 유난히 '8'이란 숫자를 좋아해 이번에도 어김없이 오후 8시부터 시작된 개막식은 하계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철저한 통제와 보안 속에 이뤄졌다.
그 유별난 신비주의의 최대 희생양은 단연 한국 선수단. 주최 측과의 의사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남자 선수 7명은 개막식장에 가지도 못하고 아예 근처 숙소에 머물렀고 한국 선수단 기수로 선정돼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이슬아 초단은 함초롬한 자태를 뽐내기는 커녕 출입구 쪽 난간에 쭈그려 앉아 있어야 하는 비운의 여인이 되고 말았다.
각국의 기수단이 입장하고 궈진룽 베이징 시장의 환영사와 호세 다미아니 IMSA(국제 마인드스포츠협회)회장의 대회사에 이어 창하오 선수가 주축이 된 대회기 게양과 중국 바둑의 1인자 구리 9단의 선수단 대표 선서가 있었다. 개막 축하 공연은 제1부 '지혜의 시작'에 이어 2부 '바둑' 등 마인드 스포츠와 관련된 4개의 에피소드로 진행됐다.
최초 인류에게 불과 지혜를 가져다 주었던 프로메테우스를 기려 영국 시인 셸리가 지었던 4막 서정시극 '결박에서 풀린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Unbound)'를 연상케 했다. 주최 측에서 내건 슬로건도 마침 '문명은 형형색색이지만 지혜는 경계가 없다(Civilization varied, Wisdom unbounded)'이다.
지혜를 겨루는 지구촌 마인드 축제는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참가자 대부분이 승부보다 경기 자체를 즐기려는 진정한 스포츠 정신으로 일치되고 있었다.
이는 궁극적으로 올림픽 이념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지역과 인종, 나이와 성별, 프로와 아마, 더 나아가서는 승자와 패자의 경계마저 뛰어넘는 진정한 인류 축제의 장으로 승화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유치원생 정도의 어린이와 초로의 노인이 장기판 앞에 마주 앉았고, 북미의 백인과 남아프리카의 흑인이 체커를 겨루며, 러시아 미녀과 중국 소녀가 체스판 위로 악수를 건네고, 프로 9단과 아마추어 7급의 선수가 호선으로 수담을 나눈다.
승자라고 해서 상대방을 무안하게 할 정도로 과도한 제스처도 없고 패자라 해서 억장이 무너지는 비통함은 어디에서고 찾아볼 수 없다. 정식 경기가 끝나면 삼삼오오 둘러앉아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과 번외 경기를 펼치며 또 다른 즐거움에 흠뻑 빠져든다. 그렇게 두뇌 올림픽은 한바탕 지구촌 축제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실 1라운드 경기가 시작될 때만 해도 프로와 아마추어가 호선으로 두어야 한다는 게 여간 어색하지 않았다. 마치 백두장사급 씨름 선수와 초등학교 선수가 맞붙는 것 같아서 머쓱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그 잠깐 동안의 어색함도 대부분 한국과 중국, 일본, 대만의 프로 선수들만이 느끼는 것이었지 대부분의 서양 아마추어 선수들은 그런 경기 방식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금메달을 가리는 경기라면 어차피 프로 강자들끼리 본선에서 맞붙게 될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오직 지금 한 판 대국의 즐거움을 오롯이 느낄 줄 아는 그들이 바로 진정한 프로들이었다.
"바둑은 환상(Fantastic)"이라고 말하는 우크라이나의 1급 소녀 소피아, 독일 함부르크에서 윤영선과 강승희 프로에게 지도를 받고 있다는 독일 4단 데이비드씨, "바둑은 경영"이라고 말하는 태국의 바둑광 세븐일레븐그룹 코삭 회장의 딸 체리야. 요즘 한국 바둑이 위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갈수록 좁아지는 국내 시장에 앉아서 탄식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눈을 해외로 돌려보면 시장은 너무나 넓다. 세계의 바둑팬들과 즐겁게 수담을 나누고(Fun), 이들에게 '한류 바둑'의 우수성을 전파하는 지혜(Wisdom)를 모아야 할 때인 것이다.
"전혀 새로운 형식의 대회라 느낌도 새롭고 즐겁습니다. 세계 각국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깊은 것 같습니다. 바둑이 올림픽으로 가는 초석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국내 프로 기사들도 해외 바둑 보급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남자 개인전에 출전한 한국 선수단의 맏형 목진석 9단의 말이다.
우리 돈으로 200억원 가까이 들여 마련된 이번 세계마인드스포츠게임은 바둑이 건강한 생활 스포츠로 육성되기 위한 귀중한 초석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조남철 스카이바둑TV 제작본부장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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