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예나 이제나 시인들은 가난하다. 모처럼만에 수중에 돈이 들어왔는데 고작 떠올린다는 게 쌀과 국밥과 소금 같은 생필품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니 더 말해 무엇하랴.
시가 쓰일 무렵인 십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 원고료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에 비해 쌀값은 많이 올랐다. 삼만 원으로 쌀 두 말을 살 수 있어 행복해했던 시인은 이제 그 돈으론 예전처럼 쌀통을 다 채울 수 없을 것이다. 시인의 셈법이 어리석었을까?
그렇다면, 이 어리석음이야말로 ‘오래된 미래’로 보인다. 생명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이 주어진 것만으로도 세상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다. 이 소박한 정신이 따뜻한 밥 한 그릇과 가슴을 데워주는 국밥, 그리고 푸른 바다를 잃어버린 채 욕망을 내려놓지 못하는 나를 부끄럽게 한다.
이 바보 시인은 지금 강화도 어느 바닷가에 폐가를 빌려 살고 있다고 한다. 평생 몇 권 팔리지도 않는 시집의 권당 인세 삼백 원에서 소금 한 됫박을 떠올린 시인답게 그와 통화를 하면 파도 소리가 쏴- 하고 막힌 가슴을 시원하게 쓸어내려준다.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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