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에서는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TV에 나와서 무언가 발표를 하면 증시가 폭락한다는 우스개가 유행이다. 중앙은행이 일반 기업어음(CP)을 직접 사 주겠다고 나설 정도로 경제학 교과서에도 없는 '사상 초유의 조치'를 연일 쏟아내고 있지만 주식시장은 폭락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뿐 아니라 경제 전문가들도 궁금해 하고 있다. 도대체 왜 '전례 없는 조치'들의 약발이 전혀 먹히지 않는 것일까?
주사 바늘 찌르기도 전에 죽는다
가장 큰 이유는 여러 가지 조치가 발동되기 전에 자금경색으로 쓰러질 금융회사나 기업이 많다는 우려 때문에 자금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1997년 우리나라의 외환 위기 당시, "OO기업이 위험하다더라" 하는 소문만 돌면 실제로 은행이나 금융기관이 대출금 회수에 나서기 시작, 유동성 부족을 겪고 부도가 나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7,000억달러 구제금융 법안이 통과는 됐지만, 실제로 집행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특히 위기를 겪는 금융기관에 직접 자본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부실자산을 매입하는 것이라 그 효과가 실제로 발휘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다. 여기에 모건스탠리 등 투자은행(IB)들은 예금 기반이 없기 때문에 하루짜리 자금시장을 통해 연명하는데 은행 간 금리인 리보(Libor)는 나날이 치솟고 있어 투자자 사이에 언제 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다.
때문에 구제금융이라는 주사바늘을 찌르기도 전에 환자가 먼저 죽어버릴 수 있다는 공포가 시장을 지배하고, 전례 없는 조치의 약발이 먹히지 않는 것이다. 뉴욕의 포트폴리오 관리업체인 J&W 셀리그먼의 투자전략가 더그 페터는 "전 세계 모든 산업에는 자본이 필요하다"면서 "단기 자금조달의 어려움이 바로 현재 시장에서 발생한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굴뚝 기업도 파산 위기
자금을 곳곳으로 보내는 경제의 '혈관' 역할을 하는 금융시스템이 붕괴 위기에 처하자 일반 기업들의 자금 압박도 심각해지고 있다. 9일 뉴욕증시 폭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GM의 실적 악화는 이 같은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날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GM을 '부정적 관찰' 대상에 편입시켰다. S&P의 로버트 슐즈 분석가는 블룸버그TV에서 "미 자동차업계가 파산신청을 하지 않는다 해도 더는 영업하기 어려울 만큼 자금이 쪼들리는 지경까지 내몰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인 GM이 위기에 처한 것은 고유가와 주택시장 침체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데다, 미 금융위기로 대출도 얼어붙자 자동차 판매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되면서 미국 경제는 단기간 경기 후퇴가 아닌 장기 침체를 겪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0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 경제가 이미 침체에 들어섰거나 아니면 곧 침체에 들어설 가능성은 무려 90%로 9월 조사 때(51%)에 비해 급격히 높아졌다. 미 경제성장률은 연율 기준으로 3/4분기 0.2% 위축된 뒤 오는 4/4분기에는 0.8% 후퇴할 것으로 예상됐다. 현재 6.1%로 이미 5년래 최고치인 실업률은 내년 중반에는 6.8%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돼 소비 부진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마크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는 블룸버그TV에 "금융시장의 요동이 최근 30년 래 가장 길고 깊은 경기침체를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JP모건체이스의 마이클 포렐리 이코노미스트도 "꽤 깊고, 다소 긴 경기침체 국면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했다.
증시 연연 말고 추가조치로 신뢰 쌓아야
미국의 불황이 글로벌 장기불황으로 전이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8일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올리비에 블랑샤드는 "힘든 시기가 되겠지만, 1930년대와 같은 대공황을 반복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 등 다른 경제학자들은 '전혀 없다'는 표현은 지나친 확신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현재 상황이 '글로벌 금융시스템 붕괴 및 심각한 글로벌 불황'으로 발전할 수 있는 위험에 직면해 있다면서 전세계 중앙은행들의 추가 금리 인하와 금융기관에 무제한 유동성 공급, 가계 채무 감면, 대규모 재정정책 등의 추가 조치가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취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번 위기는 각종 조치의 약효가 발휘되기 전에 먼저 망하는 기업이 나올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실제로 조치가 효과를 내기 시작한다면 패닉 현상은 잦아들 수 있다. 따라서 폭락하는 증시에 연연하기 보다는 금융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조치를 내놓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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