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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여성시대와 함께하는 우리 이웃 이야기] 둘째 출산 시샘하듯 더 보채는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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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여성시대와 함께하는 우리 이웃 이야기] 둘째 출산 시샘하듯 더 보채는 딸…

입력
2008.10.10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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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출산일을 앞두고 제가 참 예민해져 있습니다. 두 살 터울이 되는 딸아이는 동생이 생기는 게 싫은지 시샘이 끝도 없습니다. 평소 안 그러던 애가 자꾸 안아달라 업어달라 하고, 밤중 수유도 끊고 쉬갈이도 끊었는데 그것도 다시 퇴행하는 겁니다. 저는 '동생 낳기 전까지는 무조건 잘해주자'하는 생각이었지만 우리 딸은 그 정도 갖고도 불안했던가 봅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한테 짜증만 늘게 되고, 조금이라도 늦게 오는 신랑을 닦달하게 되더라구요.

출산을 한달 앞두던 때였습니다. 배는 남산만 해져 가고 괜히 불안해질 때지요. 계속 보채는 아이를 5~10분씩 안아주다 보니 너무 힘든 거예요. 게다가 몸은 퉁퉁 붓고, "쌍꺼풀 진 예쁜 눈이 자꾸 쳐진다" "살이 왜 이렇게 많이 쪘느냐"는 주위 얘기에 점점 서글퍼졌습니다.

하루는 없던 점들이 얼굴, 목 등에 생긴걸 보고는 더 우울해져서 눈물을 흘렸지요. 그런데 그날 따라 남편이 회식을 한다는 거예요. 요즘 따라 왜 그렇게 회식을 자주 하는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라 딸한테 짜증을 부렸어요. 그러자 눈치 9단인 딸은 기분 풀어주려 "엄마, 엄마. 이건 뭐야? 저건 뭐야?"하며 갖은 아양을 떨다 그래도 대꾸를 안 했더니 끝내 울음을 터트렸어요. 그리고는 30분을 그렇게 우는 겁니다.

안아줬더니 우유를 달라고는 한 통을 다 비우고 또 달라는 겁니다. 왜 그렇게 더 주기 싫던지, 참 제가 못됐지요. 딸이 제 얼굴을 보면서 "엄마, 우유 줘요. 우유 줘요" 하는데 마침 신랑이 또 전화해선 "좀 더 늦는다"고 하길래 화가 치밀어올라 아이를 소파에 내동댕이 쳐버렸습니다. (정말 그러면 안 되는데…) 아이는 더 크게 울고 불고하다가 우유를 받더니 "엄마, 고맙습니다"하고는 다 먹고 소파에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한참을 울었습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단지 힘들다는 이유로 애한테 화풀이나 하고…. 몇 시간 뒤 남편은 눈치를 살피며 들어오더군요. 그리곤 저를 살짝 끌어안는 겁니다. 그때 무슨 힘이 그리도 나던지 남편까지 내동댕이 쳤습니다.

남편은 술을 그다지 많이 먹지도 않았고, 그 때 시각도 12시가 채 안됐지만 딸아이한테 그런 행동을 한 내가 너무 싫고, 그게 남편 탓인 것 같아 베개로 마구 때리면서 온갖 막말을 퍼부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데. 왜 나 혼자 아이 봐야 하는데! 나도 친구들 만나서 밤새도록 수다도 떨고 싶고, 아이 없는 곳에서 맘껏 놀고싶어. 내가 왜 이래야 하는데!"

그런데 아이가 자다가 벌떡 일어나더니 덩달아 아빠한테 눈을 흘기며 같이 잔소리를 해대는 겁니다. "왜 그래! 왜 그래!… 아빠, 몰라!" 도대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딸이 저한테 "엄마 맘 아퍼? 울지마"하면서 두 주먹을 쥐고 제 눈물을 닦아주는데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한참을 그렇게 아이와 함께 눈이 두꺼비처럼 퉁퉁 붓도록 울다 잠이 들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저는 더 예민해져서 툭하면 남편한테 화풀이를 해댔습니다. "정말 화가 나고 짜증나!"하고 고함을 지르면 딸아이도 아빠한테 똑같이 "정말 화나! 짜증나!"하며 똑같이 따라 하는 겁니다. 그런 상황이 며칠 반복이 되면서 딸아이가 아빠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속 아빠를 베개로 때리고, 눈으로 흘기고…, 저랑 같은 행동을 하면서 "짜증나, 짜증나"를 반복하는 겁니다. 정말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시부모님께서도 놀라 "얘가 왜 이러냐?"하시며 물으시니 남편은 그냥 웃으면서 "다 나 때문에 그렇지 뭐, 내가 잘 안 해주니까"하며 넘겼고…, 저는 그제서야 상황파악이 되더군요. '아, 아이들은 정말 보는 대로 하는구나. 내가 남편을 무시하고 반말을 하니까 아이도 똑같이 하는구나,' 사실 남편 또한 그렇게 잘못한 게 없는데 괜히 제가 트집을 잡고있다는 것도 알겠더군요. 묵묵히 당하고만 있는 남편한테 미안해졌습니다. 안되겠다 싶어서 아이를 재워놓고 남편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지요.

"이래선 안되겠어. 나랑 자기랑 동갑이라 평소 반말을 했는데, 아이가 자기를 너무 무시하고 버릇없이 하는 것 같애. 우리 서로 존댓말하자. 첨엔 나 혼자 존댓말 할까 했는데, 그럼 저 애가 또 나를 막 대할까 봐 안되겠어. 우리 서로 존칭 써주자." 남편은 "정말 존칭은 힘들던데. 잘 안되던데"하며 쑥스러워 하더군요. 그래도 어쩔 수 없으니 그렇게 하자고 결론을 내렸죠. 그리고 절대 아이 보는 앞에서는 싸우지 말고 큰소리도 내지말고, 싸울 일이 있으면 아이가 잘 때 밖에 나가서 싸우자고도 했죠. 뒤에 아이에게도 얘기했죠. "이제 엄마 아빠는 서로 존댓말을 할 꺼야. 존댓말이 뭔지 모르겠지만 엄마 아빠가 대화하는 대로 따라하면 돼." 딸아이는 아는지 모르는지 "응"하고 대답하더군요.

이후로 우리는 서로는 물론, 아이한테도 존댓말을 했습니다. "수건 갖다 주세요. 고마워요." "정리해주세요. 고마워요."등등… …. 처음엔 아이가 신기해 하기만하고 잘 따라 하지 않더니 어느 순간부터 말투와 행동 모든 것이 달라지는 걸 느끼게 됐습니다. 우리한테 어리광 부리는 것도 조금은 줄어든 것 같고…. 무엇보다 평소 자주 으르렁대던 우리부부도 존댓말을 하면서부터 좀더 생각하고 대화를 하게 되더라구요. 정말 아이는 우리의 거울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더군요.

지금 저는 출산을 보름정도 남겨 놓고 있습니다. 지금도 감정기복이 무척 심하긴 하지만, 딸아이를 위해 많이 참고 있답니다. 정말 좋은 부모 되기가 너무 힘이 드네요. 조금 있다가 둘째가 태어났을 때도 계속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저한테 용기 좀 주세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부산 북구 구포2동 - 김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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