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아침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 본관 앞. 사무실로 향하는 삼성 임직원 대부분이 노타이에 캐주얼 차림이었다.
삼성전자가 1일부터 넥타이 갖춘 정장 대신 와이셔츠나 깃 있는 셔츠, 콤비 등을 허용하는 이른바 '비즈니스 캐주얼' 제도를 도입한 이후 달라진 풍경이다. 삼성생명과 삼성카드, 삼성SDS 등 계열사도 복장 자율화에 합류했다.
자율복장제는 1999년 CJ그룹이 국내 대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도입한 이후 LG텔레콤, SK텔레콤, GS칼텍스 등 많은 기업이 동참했다. 전경련 조사에 따르면 올 하절기 회원사 203곳 중 94.1%가 노타이로 근무한 것으로 파악될 정도로 '여름철 노타이'는 일반화했다.
그러나 한국 간판기업 삼성의 '노타이 선언'은 단연 눈길을 끈다. 그동안 삼성맨들이 관료주의적이고 상명하복(上命下服) 문화가 강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터라, 옷차림의 변화가 조직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지 주목된다.
■ 노타이로 달라진 풍경
삼성 직원들은 일단 사무실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고 말한다. 삼성전자 직원 신모(36)씨는 "일하는데 편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야유회 나온 것처럼 사내 분위기가 부드러워져 상사와 거리감도 줄고 내 의견을 전보다 편하게 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일찌감치 노타이를 선언한 기업들에서는 자율복장이 조직문화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내린다. 올해로 자율복장 도입 10년째인 CJ 관계자는 "딱딱한 정장 차림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웠던, 진취적이고 직원의 개성을 존중하는 조직문화가 만들어졌다"고 자평했다.
복장 자율화는 출근 풍속도도 바꾸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이른바 '자출족'이 등장하고, 출퇴근길 헬스클럽을 찾는 이들도 늘었다.
신한은행에서는 올 여름 사원들에게 반팔 티를 나눠줘 입게 한 후 '자출족'이 늘었다. 김모(31)씨는 "신사복 대신 반팔 티를 입으니 활동하기 편해서 잠원동 집에서 마포에 있는 회사까지 자전거로 출근했다"고 말했다.
복장 자율화 이후 '운동족'이 늘어난 데는, 넥타이가 올챙이배를 가려주는 효자(?)노릇을 톡톡히 해왔다는 비밀도 숨겨져 있다. 삼성화재의 한 부장은 "넥타이가 없으니 배가 그대로 드러나 좀 민망하다"며 "최근 헬스클럽 회원으로 가입했다"고 말했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 기업의 경우 자율복장을 뜻하는 드레스다운(Dress Down)이 일반화돼 있다"며 "조직문화를 수평적으로 바꾸고 직장 내 창의적 커뮤니케이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내일은 또 뭘 입고 가나"
물론 마냥 환영 일색인 것은 아니다. 평소 옷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던 직장인들에게는 매일매일 뭘 입을까 생각해야 하는 것도 큰 부담이다.
비즈니스 캐주얼이 도입됐다고 해서 아무 옷이나 걸치고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부터 캐주얼 복장을 도입한 현대카드ㆍ캐피탈은 전문 스타일리스트가 3주 특강과 1대1 컨설팅을 통해 '옷 잘입는 법'을 교육했다.
제일모직도 사내 인터라넷에 '비즈니스 재킷은 기본. 옷깃이 있는 상의 필요. 지나치게 캐주얼한 청재킷, 스포츠점퍼류는 피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삼성SDS에 다니는 이모(29)씨는 "캐주얼이라고 만날 똑 같은 옷을 입고 갈 수도 없는 일 아니냐"며 "두어 벌만 있어도 든든한 신사복에 비해 비즈니스 캐주얼은 상대적으로 여러 벌이 필요해 지갑 사정도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 울상 짓는 넥타이 업계
기업들에 노타이 바람이 확산되면서 넥타이 제조업체나 판매점은 직격탄을 맞았다.
롯데백화점 넥타이 매장 관리자는 "올 하절기 넥타이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나 줄었다"며 "이번 매장 재배치에서 60평이던 넥타이 코너를 40평으로 줄였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도 올 7~9월 신사복 판매량이 3% 가량 줄었다. 신사복 매장 판매인 이모(36)씨는 "손님들의 상당수가 나이 드신 분들이거나 선물용으로 넥타이를 사려는 여성들"이라고 전했다.
넥타이 제조업체도 한숨만 쉬고 있다. 경기 광주의 한 제조업체 사장은 "공무원들마저 노타이 대열에 합류하면서 매출액이 평년보다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며 "대부분 영세 업체라 주변에 공장 문을 닫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장재용 기자 jyjang@hk.co.kr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