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악몽이 떠오르고 있다. 스탠더드 앤 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등 3대 해외 신용평가사들의 움직임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을 파산 직전까지 몰고가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신용평가사들이 또다시 우리나라를 흔들어대는 양상이다.
국내 증시가 심리적 지지선으로 간주되던 1,300선이 무너진 8일, 우리금융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등 은행주의 폭락은 더욱 가팔랐다. 코스피지수가 5.81%나 빠지긴 했지만, 이들 은행주의 낙폭은 이보다도 훨씬 큰 8.25~8.7%였다. 부산은행과 대구은행은 10% 넘게 추락했다.
은행주의 급락이 있기 전인 7일, 3대 신용평가사들은 한국 경제에 대해 우울한 멘트들을 쏟아냈다. S&P와 피치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장으로 국내 은행들의 유동성 문제가 심화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국가신용등급의 하향 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무디스도 국민, 우리, 신한, 하나 등 4대 은행에 이어 부산은행과 대구은행까지 재무건전도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9월 위기설'에 우리 금융시장이 요동치던 한달 전 이들 3대 신용평가사들이 보여준 굳건한 신뢰가 무색할 지경. S&P 피치 무디스는 지난달 초 이례적으로 거의 동시에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기존 그대로 유지한다고 밝히며 우리 경제상황에 신뢰를 나타냈었다.
한달 새 월스트리트발(發) 금융위기라는 큰 변수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들의 신용평가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 신용평가사들이 위기가 발생하기 전 사전 예고는 못하고, 일이 터지고 나면 위기를 부추기는 저주를 내린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 사태 이후 지속되는 금융위기 속에서 S&P 피치 무디스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에 대한 불신도 커져 가고 있다.
무디스 등은 서브프라임모기지가 편입된 증권에 최고 등급을 주며 미국 국채만큼 안전하다고 평가했다가 지난해 여름 부실이 터지고 난 뒤에야 등급을 하향 조정하는 등 뒷북을 쳤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조사 결과, 이들 신용평가사들이 '평가 절차를 제대로 감독하지 않고 수수료 등 이익만 따지면서' 엉터리로 등급을 매겨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수모도 겪었다. 이미 수십억달러의 피해가 발생한 뒤였다.
스스로 신용을 잃은 신용평가사들의 평가에 과민 반응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푸르덴셜투자증권 성병수 애널리스트는 "유동성 문제가 있지만 국내 은행들의 신용등급이 갑자기 외환위기 수준으로 떨어질 정도로 취약하지 않다"고 최근 무디스 등 신용평가사들의 행태에 냉정한 대응을 주문한다.
문제는 주요 신용평가사들의 이 같은 횡포를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들의 신용평가가 투자를 결정하는 잣대로 위력을 떨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보니, 무시할 수가 없다.
S&P가 곧 발표할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 평가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은행 시스템이 심각하게 악화해 정부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 현실화한다면, 한국 국가신용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놓은 S&P가 등급 강등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연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향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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