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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우리말로 학문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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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우리말로 학문하기

입력
2008.10.09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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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는 일본인 일색이다. 고바야시 마코토 일본 고에너지가속기연구소 명예교수, 마스카와 도시히테 교토대 명예교수와 일본계 미국인인 남부 요이치로 시카고대 명예교수이다. 일본은 1949년 유카와 히데키가 물리학상으로 첫 노벨상을 수상한 이래 물리학상 수상자만 7명이 된다. 올해도 수상자를 또 배출한 화학상과 생리의학상 같은 이학상을 다 합치면 수상자가 13명이 되어 이 분야 국가별 순위에서도 세계 7위이다.

일본의 물리학상 수상자들은 한결같이 일본에서 대학을 마쳤지만 특히 이번 수상자 세 명은 최종 학위까지 모두 일본서 마쳤다. 80대인 남부 교수가 비록 1952년 프린스턴대 초빙을 계기로 미국에 정착했지만 도쿄대에서 공부했으며 60대인 고바야시와 마스카와 교수는 나고야대에서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이번에 수상계기가 된 '고바야시 마스카와 이론' 자체가 두 사람이 대학원생과 연구원으로 만난 나고야대에서 탄생했다.

일본 토종학자의 노벨물리학상

일본의 기초과학이 왜 강한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일본말로 학문을 한다는 것도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기초과학은, 특히 물리학 같은 분야는 물질계의 작동원리를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분야보다도 깊이 있고 독창적인 사고가 중요하다. 깊이 있고 독창적인 사고를 하려면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 그러려면 기본적인 개념이 일찍부터 제대로 잡혀야 한다. 남부 교수는 초등학교 때 과학시간에 느낀 흥미가 그를 과학자로 이끌었다고 한다. 기본개념은 어떻게 해야 잘 잡힐까.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과학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일본은 초등 중등과정은 물론 대학에서도 일본말로 과학을 가르친다. 그를 위해 서양에서 발달한 과학을 일본어로 옮기는 것을 당연한 기초과정으로 여겼다. 한자문화권인 동양 4국이 두루 쓰고 있는 과학이니 화학이니 물리학이니 하는 용어 자체가 알파벳권 언어를 제 나라 말로 파악하려 한 일본 지식인들의 번역의 소산이다. 소립자나 양자 전자 같은 용어들도 모두 일본인들이 만들었다.

덕분에 일본인들에게 세계적인 수준에서 사고한다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깊이 사고한다는 것이지 영어로 사고한다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이것은 외국어가 약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일본인들이 기초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많이 받는 것에서나 마스카와와 고바야시의 연구가 일본의 대학에서 탄생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반면 우리나라는 초등학교와 중 고등학교 과정에서 과학의 기본개념을 파악하도록 잘 가르치지도 않지만 대학에 들어가면 느닷없이 영어로 과학을 가르친다. 명문대학일수록 자연대 공대 의대에서 물리 화학 생리학 같은 기초분야에 영어교재가 쓰인다. 내용만 익혀도 부족할 시간에 외국어 부담까지 겹치니 한국어로 익혔을 때와 비교하면 절반도 못 배운다. 한국의 기초과학은 외국으로 유학갈 것을 아예 상정하고 가르치는 셈이다.

깊이 있게 사고해야 세계적

교수들은 기초과학 분야의 명저들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아서라고 말을 하는데, 이렇게 원서로 가르치니 번역할 의미가 없어진다. 한국어라면 열 권도 더 읽었을 전공서적을 한 권 파악하는 것도 힘겨우니 기본사양에서 한국 대학생들이 일본 대학생들보다 처지는 것은 당연하다. 대학을 나와도 배운 게 없다는 것도 바로 이래서 생긴다.

대학의 기초과학 교육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높이기 위해 외국의 석학들을 모셔오는데 나라에서 돈을 아끼지 않겠다고 한다. 듣기에는 근사하다. 그런데 과연 전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과학실험은 맘껏 할 수 있는가. 초 중등 대학과정에서 과학을 바르게 이해할 기초는 마련되어 있는가. 세계적인 수준에서 사고한다는 것은 영어로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깊이 사고한다는 것을 실천할 바탕은 마련되어 있는가. 한글날이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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