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불안이 확산되면서 세계 자동차 시장이 급속히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경기 침체와 고유가, 원자재값 폭등으로 가뜩이나 판매 부진에 허덕이던 자동차 업체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초대형 악재를 만나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유럽의 자동차 메이커들은 6일(현지시간) 정부를 상대로 400억유로(약 69조원) 상당의 대출을 요청하는 'SOS'를 쳤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 크리스티안 스트라이프 회장은 "소비자들이 구매를 주저하는 상황이라 정부의 특별조치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29일 GM 등 미 자동차 '빅3' 업체도 미국 정부에 250억달러 지원을 요청해 이날 승인을 받아냈다.
미 월가에서 시작된 금융위기 태풍이 북미 자동차 시장을 거쳐 유럽 시장에 본격 상륙하는 모습이다. 이미 몰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미 자동차 '빅3'는 정부 지원에만 목매는 처지이고, 그 동안 비교적 선전해온 유럽 메이커들도 독자 생존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 자동차 시장은 이미 초토화 상태다. 9월 자동차 판매량은 96만대로, 1993년 이후 15년 만에 처음 100만대 밑으로 떨어졌다. 전년 동월보다 26.6%나 감소한 것으로, 8월 낙폭(15.5%)의 두 배에 육박한다. 포드가 12만355대를 팔아 감소폭(35%)이 가장 컸고, 크라이슬러도 33% 하락했다. GM은 16% 감소해 숫자상으론 선방했지만, 이윤이 거의 남지 않는 '직원 할인가' 세일 덕분이었다.
최근까지 선전했던 도요타와 혼다 판매량도 전년 동월 대비 각각 32%, 24%나 줄었다. 현대차는 2만4,765대를 팔아 25.4% 감소했다. 기아차(1만7,383대)도 27.8% 줄었다. 드넓은 땅에서 사실상 '발' 역할을 하는 자동차의 수요마저 급감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할부금융을 통해 자동차를 구입하는 미국 소비자들의 특성상 돈 줄이 마른 최근 상황에서 차량 구입은 '모험'에 가까운 수준이 돼버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사정이 이쯤 되자 잘 나가던 도요타도 4일부터 미국시장에서 11개 전 모델에 대해 무이자 할부 판매에 돌입했다. 캠리, 코롤라, 탄드라 등 총 11개 모델에 대해 판매금융 금리 '0'를 적용한 것이다. 도요타가 미국시장에서 무이자 할부에 나서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판매 부진에 따른 충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수 있다.
유럽시장도 패닉 일보 직전이다. 올해 1~8월 서유럽 시장 자동차 판매량은 961만2,774대로, 전년 동기 대비 4.4% 줄었다. 특히 올들어 자동차 판매가 증가세를 보이던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금융위기가 확산된 8월에 전년 동월 대비 각각 41.3%, 26.4% 급감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유럽의 자동차 메이커들은 각국 정부가 대출을 승인할 경우 구입 8년 이상 된 차량(서유럽 전체 자동차의 36%)의 신차 교체를 촉진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스트라이프 회장은 "위기에 처한 자동차 업계를 살리려면 하루 빨리 정부가 나서서 저리의 대출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시아 시장도 이번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올 들어 9월까지 일본시장의 누적 판매대수는 17만2,040대로 전년 동기(19만7,136대)에 비해 12.7%나 줄었고, 우리나라와 중국 자동차 시장도 감소세로 바뀌고 있다.
자동차산업연구소 심장희 연구원은 "미국시장의 판매 부진이 장기화할 것으로 보이는 등 세계 자동차 시장이 위기 상태인 만큼 국내 업체들도 대응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유인호 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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