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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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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서해

입력
2008.10.07 00:11
0 0

이성복

아직 서해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까요

검은 개펄에 작은 게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이겠지요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어야 할까봅니다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내 가보지 않은 한쪽 바다는

늘 마음속에서나 파도치고 있습니다

산을 오르다가 중턱 쯤에서 그냥 내려온다. 어느날은 오르다 말고 들꽃 그늘 시큰대는 것만 바라보다 돌아오기도 한다. 조금만 가면 약수터가 나오고, 또 무슨 절이나 성터가 코앞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정상이 저긴데, 여기까지 와서 하산하는 건 너무 싱겁지 않느냐 볼멘 소리를 해도 할 수 없다. 그리곤 다 오르지 않은 산에 서리가 내리고, 구름이 머무는 것을 멀찌감치서 바라본다. 그리움은 오르지 않은 산정 하나를 가슴에 남겨두는 일과 같다. 그 산이 여느 산과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지만, 내게는 그 산이 세계의 중심축이다. 거기에 당신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혼자서 노을을 맞고, 바람 소리를 듣고, 떠나온 세상을 생각할 수 있도록 그 자리를 비워두는 게 내 남루한 사랑법이다.

남은 것은 산만한 그리움으로 그리움을 눌러놓는 일. 그리움의 뿌리가 달싹이지 않도록 눌러놓고 꽃 피고 잎 지는 풍경을 아슴아슴 견뎌내는 일. 가지 않는 마음으로 하여 당신이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이때 내 안에 산이 하나 들어온다. 당신이라는 산, 다 오르지 않은 그 산 위에서 함께 읽던 바다가 여기 있다.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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