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씨가 죽는 것을 보고 빚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
2005년 2월 영화배우 이은주씨가 자살한 지 1주일 만에 목을 매 자살한 20대 여성은 사건 전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씨의 자살이 돈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카드 빚에 허덕이던 그녀에게 이씨가 자살 모델이 된 것이다. 이씨의 자살 후 잇따른 모방자살은 국내에서도 '베르테르 효과'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유정화 고려대 안암병원 간호사는 올 초 고려대 보건대학원 논문 '한국에서 베르테르 효과에 대한 연구'에서 1994년부터 2005년까지 12년간 국내 유명인의 자살 후 자살 증가율을 분석한 결과, 유명인이 사망하면 월 평균 137명이 더 자살한다고 밝혔다.
저명인사나 유명 연예인의 자살 후 모방자살이 우리 사회에서도 심각한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았음을 학문적으로 증명한 셈이다.
모방자살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자살예방협회 관계자, 심리학과 교수, 신경정신과 의사 등 전문가들은 유명인의 자살에서 오는 동조의식이 자신의 자살을 합리화하는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명인의 자살은 그 동기를 부여하는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살은 누구나 생각하는 본능이면서도 실행하기는 가장 어려운 일인데 유명 인사들의 자살은 실행에 옮기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서동우 한별병원 진료원장은 "스타나 정치인의 자살은 매스컴을 통해 종종 원인이 단순화되는 경향이 있어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은 쉽게 동일시해 모방자살에 이르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유명인의 자살에 대한 동정적 여론이 모방자살로 이끄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얼마나 힘들었기에 자살을 택했을까'라는 식의 자살에 대한 반응이, 자신도 자살하면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오강섭 자살예방협회 부회장은 "심리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은 '나도 죽으면 저들처럼 위로 받겠구나', '살아 있을 때는 관심도 못 받는데 죽으면 관심 받겠구나'라는 생각으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모방자살의 범주로 ▲자살 방법의 모방 ▲자살 이유의 모방 ▲무작정 따라하기 등을 꼽는다. 탤런트 안재환씨가 자살한 후 3명의 자살자가 차에서 연탄을 피워 목숨을 잃은 것은 방법의 모방에 해당된다. 탤런트 이은주씨의 자살 이후 돈 때문에 자살한 사람이 속출한 것은 이씨의 자살 이유를 모방한 것이다.
또 1977년 미국의 록스타 앨비스 프레슬리가 사망한 뒤 발생한 동조 자살 현상과 1986년 일본의 아이돌 스타 오카다 유키코가 자살한 후 10대 청소년 30여명이 자살한 것은 무작정 따라 한 경우다.
하지만 모방자살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강섭 부회장은 "직업이나 가족을 상실한 경험이 있는 사람과 우울증 환자들은 유명인이 자살하면 일반인보다 충격을 더 받아 모방 자살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자살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나 가족력이 있는 사람, 청소년들도 모방자살에 취약하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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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도 죽는데 나도…”모방자살 도미노 우려
톱 탤런트 최진실씨의 자살 사망 이후 일반인들의 모방자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명인의 자살사건 이후 모방자살이 늘어난다는 사실은 여러 사례에서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평소 죽음을 자주 언급했거나,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등 소위‘자살 위험군’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주변의 특별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다.
최씨 사건 이후 이미 비슷한 유형의 자살사건이 발생했다. 3일 오전 0시40분께 전남 해남군에서 박모(55^여)씨가 자신의 아파트 욕실에서 압박붕대로 목을 매 숨졌다.
이날 오전 6시께 강원 강릉시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도 이모(30^여)씨가 같은 방법으로 자살 사망했다.
지난달 8일 안재환씨의 자살사건 이후에도 차 안에서 연탄을 피워놓고 자살하는 등 모방자살이 잇따랐다.
흔히‘베르테르 효과’로 불리는 모방자살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에서 비롯됐다. 주인공 베르테르가 실연 후 권총으로 자살하는 내용의 이 소설의 영향으로 독일, 덴마크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 베르테르처럼 노란 조끼를 입고 자살하는 젊은이들이 급증한 데 따른 것. 자신이 평소 동경했던 인물이나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유명인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더 비관해 자살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그 후 많은 연구에서 확인됐다. 젊은>
검찰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2005년 탤런트 이은주씨 자살 후 한달 새 서울지역에서만 하루 평균2.13명이 자살해 이씨 자살 전 53일간 하루 평균 0.84명에서 2.5배 증가했다. 자살자 가운데 이씨와 같은 방법으로 숨진 사람의 비율도 53.3%에서 79.6%로 크게 늘었다.
2003년 8월 정몽헌 현대아산회장의 자살 이후에도 안상영 전 부산시장(2004년 2월 5일),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3월12일), 박태영 전 전남지사(4월30일) 등 유명인사들의 자살이 잇따르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1986년 10대의 우상이었던 가수 오카타 유키코가 투신자살한 이후 2주 동안 청소년 30여명이 투신 자살했다.
전문가들은 최씨 자살 이후에도 예상되는 모방자살을 막기 위해 주변의 각별한 관찰이 요구된다고 경고했다. 이광자 한국자살예방협회부회장(이화여대 간호학과 교수)은“‘유명인처럼 돈과 명예를 가진 사람들도 자살하는데 나는 살아서 뭐하느냐’는 생각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다”며“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30대 이상 혼자 사는 이혼녀 등(최씨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모방자살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모방자살을 막기 위해 관련 기관,단체들도 나서고 있다. 전문상담기관인 생명의 전화는 10일‘생명사랑 밤길 걷기대회’를 통해 모방자살예방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자살예방협회는 자살예방수칙홍보 등 대국민 캠페인을 준비 중이다. 경찰도 자살사이트 단속을 강화하는 등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살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이 연간 3조원에 이를 정도로 증가하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보건복지가족부는 내년부터 범정부 차원의‘자살 예방5개년 종합대책’을 통해 자살률을 2013년까지 현재 인구 10만명당23.6명에서 21.2명으로 낮추겠다고 지난달 9일 밝혔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 자살의 징후와 예방/ 폭식 등 행동 변화…처한 상황 무시하는 이야기 안돼
자살을 모두 막을 수는 없지만 최소화할 수는 있다. 자살 징후 파악과 예방활동을 통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특히 탤런트 최진실씨처럼 유명인이 자살한 뒤 모방자살을 막기 위해 이 같은 활동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살을 앞둔 사람은 반드시 징후를 보인다. 민성길 신촌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교수는 "죽고 싶다는 말과 낙서, 문자메시지는 가장 흔한 자살 징후"라고 설명했다.
미국 응급의학협회가 올해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살을 계획하는 사람은 갑자기 폭식을 하거나 반대로 먹지 않는 등 식습관에 변화가 일어나고 자살 관련 책, 독극물에 관심이 많아지는 등 이전과는 다른 행동을 한다.
민 교수는 "강제 퇴직, 경제적 손실 등으로 힘들어 하던 사람이 갑자기 담담해지는 것도 증상이 개선된 것이 아니라 머지 않아 자살을 결행하려는 조짐"이라고 말했다.
징후가 나타나면 가족,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은 바로 자살예방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상담전문기관인 생명의 전화가 지난해 펴낸 자살예방 지침서는 '▲절대 혼자 두지 말라 ▲119, 의료기관 등에 도움을 요청하라 ▲도움을 요청하고 기다리는 동안 시선을 마주보면서 손을 잡고 대화하라 ▲자살 기도자의 입장을 이해하라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많다는 사실을 상기시켜라'고 권장하고 있다.
자살예방협회 관계자는 그러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도 자살 기도자가 처한 상황을 무시하거나, 자극을 주면 오히려 자살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관계자는 "자살할 구체적인 계획이 있거나 두 번 이상 자살 시도를 한 사람은 고위험군"이라며 "고위험군 징후를 보이면 자살이 임박했다는 의미이므로 곧바로 지역응급센터나 생명의 전화, 자살예방협회 등 관련 단체에 도움을 청하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살 예방교육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이은철 분당차병원 정신과 외래교수는 "주변에 자살하려는 사람이 있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국민 누구나 자살 예방법을 알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자살하는 사람의 80~90%가 술의 힘을 빌려 자살을 시도한다는 통계가 있다"며 "우울증 등 자살 징후가 있는 사람들이 술을 자제하도록 주변에서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김성환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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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성 루머로 고통받는 연예인
#1 지난해 출연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스타로 떠오른 여자배우 A씨는 호되게 유명세를 치러야 했다. 영화가 한창 흥행몰이를 할 무렵 한 감독과의 열애설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카더라 통신'으로 떠돌던 이야기를 한 인터넷 매체가 사실인 양 보도하면서 소동이 벌어졌다. 소속사와의 계약이 거의 끝나 새로운 계약을 앞두고 있던 A씨는 이 루머로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됐다.
#2 배우 B씨는 수년 전 정치권 진출을 위해 반정부 시위에 자주 참여한다는 악플에 시달렸다. 총선 출마 등을 한사코 부인했지만 소문은 기정사실화돼 버렸고, 영화와 CF 출연 제의가 조금씩 줄더니 급기야 뚝 끊기고 말았다.
B씨는 결국 2년 가까이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배우가 납득할 수 없는 악플에 발목 잡혀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깝기만 했다"고 말했다.
배우 최진실씨의 자살을 계기로 연예계의 루머, 그 생산ㆍ유통 실태와 파급 구조에 대한 비판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업계 종사자들은 루머를 대중의 호기심을 먹고 사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이라 치부하면서도, 일부 악성 루머는 금도를 넘어 연예계 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심각한 병폐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씨의 자살에 이어 모방자살 현상까지 우리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것도, 결국 그 근원을 따져 보면 끊임없이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루머라고 할 수 있다.
연예계 루머의 주요 진원지는 소문에 민감한 증권가다. 일명 '찌라시'라고 불리는 증권사 정보지에는 연예인들의 검증되지 않은 시시콜콜한 사생활 정보까지 담긴다.
때론 연예계가 루머를 자체 생산하기도 한다. 소속사를 떠나려는 배우나 가수를 붙잡기 위해 일부러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는 매니지먼트사까지 있다.
연예인을 둘러싼 괴소문은 당연하게도 경제적인 피해로 연결된다. 물론 대부분의 광고나 영화 출연계약 등은 연예인을 둘러싼 루머들이 사실로 확인되지 않는 한 파기되지 않는다.
문제는 차기작 섭외다. 한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사실이 아니라 해도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차기작 출연은 사실상 물 건너간다"며 "특히 광고는 6개월, 1년 단위로 계약하기 때문에 루머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나랴'는 대중들의 정서는 루머를 확대 재생산한다. 최근 증권가를 중심으로 유포되고 있는 소위 '엑스파일 2'라는 괴문서가 대표적인 사례다.
엑스파일 2는 2005년 한 광고기획사가 내부용으로 작성했다 일반에 공개되면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킨 '엑스파일'에서 이름만을 딴 괴문서. 내용이 극히 비정상적이고 조잡한데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작성했는지 알 수 없는 문서임에도 많은 대중은 사실로 오인하고 있다는 게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중론이다.
영화사 KM컬처 심영 이사는 "관계자들이 엑스파일2의 존재를 더 늦게 알 정도로 대중은 괴소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대로 받아들인다"며 "곧이어 동영상 엑스파일3가 공개될 것이라는 등 근거없는 말이 떠도는 현실은 매우 유감"이라고 꼬집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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