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커버스토리/ 세월의 더께 수북해도… '다방의 추억'은 진행형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커버스토리/ 세월의 더께 수북해도… '다방의 추억'은 진행형

입력
2008.10.06 00:13
0 0

■ 거기, 다방이 있었다.

이상이 식민지 인테리의 데카당스를 내뿜으며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를 끄적이던 인사동 골목. 유치진이 사탕을 넣은 홍차를 홀짝이며 문청들에게 꿈을 불어 넣던 소공동 끝머리. 최인규 김영희가 끙끙대며 시나-리오를 구상하던 진고개(충무로) 초입. 김동리 조지훈 서정주가 클라식 멜로디에 취해 몰려다니던 명동 번화가….

모더니즘이니 실존주의니 하는 희떠운 관념에 숨이 붙어 있던 시절, 지식인 혹은 고급 룸펜들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다방이 있었다. 국밥 한 그릇 값에 코오피 한 잔의 여유를 주는 이 침침한 공간은, 폐병쟁이 니힐리스트들의 해방구였고 가슴 여린 모더니스트들의 사랑방이었으며 혁명의 불온한 꿈을 꾸는 로만티스트들의 은신처였다.

1920년대 다방(茶房)이라는 이름의 찻집들이 처음 생겨난 뒤부터, 다방은 한국인들의 정서 속에 특별한 기능과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인식됐다. '코오피'라는 제국주의 열강의 음료는 단순한 기호식품 이상의 맛으로 한반도 인민의 혀끝에 전해졌다.

아득하면서도 알싸한 흑갈색 액체는 계몽과 모더니즘, 문화적 선민의식의 상징이었다. 다방은 '모단보이, 모단걸'들의 회합소이자 신문화를 창출ㆍ소비하는 전진 기지였다. 해방과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도 다방은 그 역할을 이어갔다.

다방이 곧 문화를 의미하는 시대는 길었다. 세기말의 우수를 풍기는 시인과 가객, 베레모를 신분증처럼 착용하고 다니던 화가들, 그리고 그들을 흉내내고 다니던 어중이떠중이까지. 다방은 예인들이 하루 한 번 출근도장을 찍어야만 하는 장소였다.

어느 다방의 기다림이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가 되고, 다른 다방의 쓸쓸함은 오상순의 '방랑의 마음'이 됐다. 허장강의 "마담, 심심한데 뽀뽀나 한 번 할까"는 한 번쯤 따라하고픈 최첨단의 대사였다.

다방이 지닌 문화적 가치와 역사성은, 그러나 무참히도 빠른 속도로 몰락했다. 권력이 주도하던 산업화가 자본 주도의 후기산업사회로 넘어가던 무렵. 다방은 중심가에서 변두리로, 다시 변두리에서 지방의 소도시, 면소재지로 밀려났다.

모든 것을 서구의 기준으로 계량화하는 삭막한 속도의 공화국. 무디고 느린 다방의 문화는 처참히 짓밟혔다. 문인의 아우라가 숨쉬던 공간, 거기엔 어느새 퇴폐와 저질의 이미지가 입혀졌다.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 으레 그러하듯, 우리네 다방 문화도 조용히 사라져갔다.

■ 여기, 아직 다방이 있다.

새벽 첫 그물을 뜨러 가는 고깃배에 계란 띄운 모닝커피를 실어 나르는 퇴락한 부둣가. 선산 시젯날을 정하러 모인 문중 어른들이 쌍화차를 주문하는 면사무소 삼거리. 점백을 치다가 쓰리고를 성공시켜 좌중에 밀크커피 한 잔씩 돌려야 하는 동네 복덕방. 누린 고깃국물의 뒷맛을 씻어줄 계피차가 필요한 보신탕집 골목….

인생의 템포가 아날로그로 측정되는 세상의 풍경 속에서, 다방은 여전히 명맥을 이어간다. 세련된 청춘남녀는 오래 전에 스타벅스에 빼앗기고, 이제 이쑤시개를 입에 문 중년들이나 찾는 공간. 문학과 예술의 향취 대신 삶의 곰삭은 군둥내가 진동하지만, 다방에선 여전히 커피를 팔고 손님들은 나름의 여유와 흥취를 이곳에서 찾는다.

주택가 귀퉁이에 예스럽게 자리 잡은 일본과 유럽의 오래된 커피집. 몇 대(代)의 역사를 자랑하는 그 고풍스러운 모습을 보고서야, 사람들은 사라져 버린 우리의 다방을 아쉬워한다.

그리곤 이미 옛 정취를 잃어버린 찻집에 억지로 문인들의 전설을 끌어다 붙이거나 어설프게 옛 다방을 복제하고 있다. 하지만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 우리의 다방은 모두 씨가 말라버린 것일까.

눈을 지방으로 돌려 보면 아직 진짜 다방을 찾을 수 있다. 정작 본인들은 쉬쉬하고 있지만, 어머니가 딸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물려준 수십 년 된 다방도 있다. 때가 더께더께 앉은 낡은 탁자에 '크라운 맥주' 상표가 붙은 유리컵에 커피를 내오는 곳.

이웃들에겐 1,000원을 받고 외지인에겐 당당히 2,000원을 요구하는 그런 다방이 여전히 있다. 50대 마담이 막내동생뻘 되는 '레지'와 구석에서 김치찌개를 먹고 있는 모습으로 연명하고 있다.

문화적 첨단성은 말라버렸지만 삶의 애잔함과 추억을 담은 채 손님을 맞는다. 휴대전화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 성냥을 쌓고 신문지 귀퉁이에 낙서를 하며 벗을 기다리던 넉넉한 마음이 이곳엔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다방들을 보존하려는 움직임도 천천히 인다. 55년 전부터 경남 진주시에서 커피를 팔고 있는 흑백다방, 6ㆍ25쟁 직후 전북 전주시에 문을 연 삼양다방 등이 그런 곳이다. 세월이 있고, 추억이 있고, 우리네 삶이 있는 곳. 그곳이 다방이다.

●도움말 박종만 왈츠와닥터만 커피박물관장

■ 왈츠와 닥터만 커피박물관 '다방展'

경기 남양주에 있는 왈츠와닥터만 커피박물관은 3일부터 '소중한 우리 문화, 다방'전을 한다.

문화와 예술을 품고 있던 다방이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까워 준비했다는 이 전시는 옛날 다방의 낡은 커피잔, 교환원이 돌려 주던 전화번호가 적힌 다방 성냥갑 등 향수어린 유물과다방 문화를 보여주는 영상ㆍ사진ㆍ자료를 모았다.

1950~60년대 다방을 재현해 놓고 달걀 노른자가 동동 띄운 그 시절 모닝 커피를 제공한다. 문 연 지 반세기가 넘은 전국에서 가장 오래 된 다방과 경관이 아름다운 다방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전시는 11월 9일까지. (031)576-6051

유상호 기자 shy@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 한적한 주택가 동네카페 '新다방시대' 열다

언제부터인가 카페는 멋지게 차려입고 나들이를 나서야 하는 관광명소가 됐다. 커다란 카메라를 둘러멘 세련된 도시남녀들이 탐방하듯 삼청동과 신사동, 청담동과 홍대 앞을 휩쓸고 다닌다.

동네 한복판에, 골목 어귀에 자리한, 오며가며 드나들던 옛 다방들은 죄다 사라진 지 오래. 휘황찬란한 메뉴로 무장한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들이 유행의 광풍을 불러일으키며 다방문화를 멸종시킨 게 이미 여러 해 전이다.

그러나 세월은 흐르고 역사는 반전하는 법. 커피문화의 역사에도 작지만 강력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여느 커피전문점 못지않은 맛과 메뉴를 갖춘 작고 소박한 동네카페들이 스타벅스의 글로벌 파워에 질린 이들을, 요란한 번화가의 카페에 지친 이들을 기다리며 하나 둘 주택가에 둥지를 틀고 있다. 바야흐로 동네카페가 만개하기 시작하는 '신(新) 다방시대'다.

◆ 연희동의 스테레오커피(Stereo Coffee)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적한 주택가. 언뜻 보면 떡볶이집 같은 작고 아담한 가게 하나가 눈길을 끈다. 문 앞에 각종 화분들이 놓여 있고, 안으로 들어서면 작은 테이블 4개와 의자 2개짜리 바 하나가 전부. 아담하고 편안한 공간을 메우고 있는 소품과 인테리어가 소박하고 정감이 간다. 동네카페, '스테레오커피'다.

오창석(32)씨가 친구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이 카페는 홍대 앞이나 삼청동 같은 '카페 관광지' 대신 동네사람들이 누구나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편안하게 머물다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고즈넉한 주택가 한복판에 자리잡았다.

카페 관광지는 장소가 필요해서 가는 곳이지만, 이곳은 커피가 필요해서 오는 곳이라는 게 주인장들의 생각. 굳이 번화가가 아니더라도 카페를 소비할 만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많은 연희동을 선택했다.

이들이 직접 로스팅하고 드립해 만드는 커피는 여느 고급 카페와 견주어도 손색없을 만큼 맛있다. 작은 동네카페지만, 커피를 볶다 실수하면 그대로 쓰레기통에 쏟아 버리는 주인들의 고집스런 자존심 덕분이다.

인테리어도 특별한 멋을 부리기보다 실용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분. 주인들이 동네 손님들의 도움을 얻어 직접 만든 것들이라 다른 곳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곳에 위치한 카페가 장사가 잘 될까 싶지만 의외로 이 카페는 성업 중이다. 손님들의 연령대는 꼬마들부터 노인층까지 다양하지만 대부분이 이곳에 사는 동네 사람들이다. 하루에 서너 번씩 들르는 단골 손님들도 많은데, 동네카페다 보니 지나가다 들르고, 장보러 가다가 들르고, 자전거 타고 가다가 들르는 그런 식이다.

스테레오커피는 옛 다방문화를 살려 원두와 커피를 배달도 해준다. 개업 후 8개월 동안 두 번의 무료 음악 공연도 했다. 포크 공연과 재즈 공연이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주차장이나 땅바닥에 앉아서 공연을 구경하는 한바탕 축제 분위기가 연출됐다.

"다른 곳에도 이런 동네카페들이 많이 생겨서 커피문화가 정착됐으면 좋겠어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엔 동네문화가 너무 없잖아요. 오래된 가게도 없고." 주인장들은 "이런 카페가 동네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하나의 동네문화로 자리잡았으면 하는 게 바람"이라고 말했다.

◆ 효자동의 카페 두오모(Duomo)

서울 종로구 효자동의 한적한 골목길에 자리잡은 카페 두오모는 작고 소박하다. 연두색과 갈색 톤으로 꾸며진 내부,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하늘색의 넓은 창틀. 몇 개 되지 않는 테이블은 죄다 2인용이고, 큰 테이블은 중앙에 놓인 것 하나뿐이다. 혼자 오는 손님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다.

"혼자 여행을 다닐 때마다 동행이 없어도 거리낌없이 들어가 편하게 쉴 수 있는 카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친구 허인(38)씨와 함께 카페를 운영하는 김희정(37)씨는 "그래서 혼자 오는 손님들에게 각별히 더 신경을 써준다"고 말했다.

'나홀로 손님'들이 부담 느끼지 않고 책도 읽고 차도 마시면서 오랫동안 편하게 쉬고 갈 수 있도록 괜히 다가가 말을 걸거나 귀찮게 하지도 않는다.

4년 전 낡은 단층 한옥과 다세대주택이 즐비한 주택가 한복판에 두오모를 연 이들은 강북 특유의 정서가 좋아 이곳에 둥지를 틀게 됐다고 한다.

집을 뜻하는 라틴어 '도무스(DOMUS)'를 어원으로 하는 두오모는 집 같은 카페, 집이 그리워지게 만드는 카페를 지향하는 이들의 바람을 담아 붙여졌다. 하지만 누가 봐도 이 동네는 카페를 열기엔 뜬금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

"강북이 좋아 삼청동도 생각해 봤지만 너무 상업적으로 변한 것이 싫었어요. 옛것이 남아있는, 그런 정취가 살아 있는 고즈넉한 곳을 찾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됐죠. 옛날 다방은 한 동네에서 오래 자리를 잡았잖아요. 주택가에 있다 보니 오다 가다 들르는 동네분들이 많은데, 우리도 그렇게 동네에 오랫동안 있어 주는 아늑한 곳이 되고 싶어요."

핸드드립 커피와 손수 만든 이탈리아 가정식을 주메뉴로 하는 이곳은 프랜차이즈 커피점과는 다른 '나만을 위한, 나만의 카페'라는 특별한 느낌을 준다.

김씨는 "스타벅스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는 다수의 취향을 반영하는 대신 그 카페만의 개성이 없다"며 "이런 자그마한 동네카페는 주인의 개성과 취향이 묻어나고 또 그것을 손님과 교감할 수 있다는 데 장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청와대 연무관 뒷편의 '카페 SOOP'

효자동의 청와대 연무관 뒷편에 숨어 있는 플라워 카페 숲(SOOP)은 누구든 편히 들어올 수 있도록 문 없이 뻥 뚫려 있다. 내부는 생화와 나무들로 가득해 정말 숲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 한적한 동네를 산책하다 들러 맛있는 커피 한 잔 하고 가게 만들자는 게 주인장의 소박한 포부다.

주요 고객은 청와대나 인근 경복고에 근무하는 20~30대의 젊은 직장인들이지만, 주택가다 보니 동네 주민이나 노인들도 많이 찾는다.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과 달리 편하게 무언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기 때문.

"스타벅스가 디지털 느낌이라면 우린 아날로그죠. 스타벅스처럼 시끄러운 분위기에선 혼자 커피 마시고 책 읽기가 어렵잖아요. 대화에 집중도 하기 힘들고.

하지만 여기는 공간이 남아도 개인 공간을 가질 수 있도록 테이블을 다닥다닥 붙여놓지 않았어요." 바리스타 겸 매니저 이일네(26)씨는 "동네카페들은 만남의 장소이자 문화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옛날 다방과 비슷하다"며 "전국 곳곳에 이런 동네카페들이 퍼져 카페문화가 활성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잠실의 '김대기의 커피 볶는 집'

서울 송파구 잠실의 작은 동네 골목에 위치한 '김대기의 커피 볶는 집'은 옛날 동네다방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풍긴다. 인테리어 대신 커피 맛에만 신경 쓰겠다는 주인 김대기(44)씨의 의지 때문이다. 슬리퍼 끌고 오는 동네 손님들이 대부분인 이곳은 로스팅과 드립을 직접 해 만드는 깊은 커피 맛으로 유명하다.

김씨는 "오늘날 이런 카페는 어른들의 놀이터 역할을 했던 옛 다방문화에서 맛이나 분위기가 업그레이드된 버전"이라며 "진짜 카페문화는 옷 차려 입고 일부러 멀리 찾아가야 하는 획일화된 카페가 아닌 동네 사랑방처럼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이런 지역 밀착형 카페에서 꽃피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강유진 인턴기자(이화여대 4)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 계란 풀고… 스타벅스… '다방 커피 변천사' 반세기

1888년 개항지 인천에 현대적인 의미의 다방이 첫 선을 보인 이래, 시대의 부침에 따라 다방의 차림표도 우여곡절을 거쳤다.

20세기 초반 지식인의 사랑방으로 뿌리 내린 다방의 주메뉴는 원두 커피였다. 한국전쟁 뒤 미국문화가 급속한 침투하면서 인스턴트 커피가 주류로 등장했으며 계란 풀은 쌍화차가 다방서 인기를 끈 것도 전쟁 직후다.

"오 마담, 나는 계란 둥둥 띄운 모닝커피 한잔!"이라는 주문이 유행했던 시점은 60년대 중반. 기상 뒤 각성을 위해 마셨던 서구의 모닝커피와 달리 한국식은 뜨끈한 커피에 날계란 노른자를 풀고 참기름도 한 방울 가량 떨어뜨려 영양까지 고려했던 커피였다.

허기를 살짝 가시게 하는 모닝커피가 유행하면서 아예 계란반숙이 70년대까지 다방 메뉴판 고정자리를 차지하기까지 했다.

70년대 유행했던 커피 중 하나는 일명 '해장 커피'. 서울의 몇몇 고고클럽에서 밤새도록 놀다 새벽녘에 나온 젊은 남녀들이 버스가 다니기 전 다방에 들려 토스트 한 조각을 곁들여 마신 커피가 바로 '해장 커피'였다.

80년대 들어서면서 웰빙에 조금씩 눈을 뜬 소비자들은 설탕과 크림을 뺀 블랙커피를 찾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에 인스턴트 커피가루만 탄 블랙커피는 커피 맛을 진정 깨달은 사람이 즐긴다는 문화적 기호를 형성하면서 다방의 주 메뉴로 자리잡았다.

80년대 후반 민주화와 서울올림픽 개최로 문화적 획일성을 벗어나기 시작한 한국인들은 커피 일변도의 다방 메뉴에서도 다양성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술과 사이다, 달걀을 섞어 거품을 잔뜩 낸 하이볼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다. 홍차와 칡차, 매실차 등 몸에 좋다는 차란 차들이 90년대까지 앞 다퉈 쏟아지기도 했다.

사회의 급격한 발달은 다방과 다방표 메뉴의 쇠락을 불렀다. 92년 프랜차이즈 형식의 커피전문점이 등장하면서 중ㆍ장년층도 다방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해이즐럿 등 강한 향기를 앞세운 '향 커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커피전문점은 '리필'의 개념과 생크림 조각케이크를 선보이면서 서구식 커피문화를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90년대 후반 스타벅스를 시작으로 에스프레소 커피를 앞세운 외국계 커피체인이 들어오면서 다방표 메뉴는 시간 속에 묻혔고, 얼그레이 등 새로운 차 문화도 유입됐다.

●참조<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강준만ㆍ오두진 지음)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